좋은 건축과 도시에 대한 소망은 조금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다. 좋은 건축, 좋은 도시를 떠올릴 때 단골손님과 같이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있는 곳, 바로 유럽. 《유럽의 발견》은 오스트리아, 체코,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 14개 도시에 자리한 15개 건물을 통해 유럽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유럽의 발견》은 세 개의 키워드를 염두에 두었다. 바로 유럽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인 ‘문화예술’, ‘랜드마크’ 그리고 ‘녹색’이다.
‘문화, 예술 그리고 낭만으로 가득하다’에서는 유럽을 특징짓는 분명한 키워드인 문화와 예술을 드러내는 건물을 들여다본다. 오래된 주택과 버려진 낡은 창고를 새로운 공공공간으로 개조한 사례, 새롭게 복원한 파빌리온 그리고 첨단과학이 사용된 미술관 등을 통해 유럽에서 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를 살핀다.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에 자리한 쿤스트하우스는 그 파격적인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찰흙으로 장난해 놓은 것과 같은 모습의 쿤스트하우스는 ‘친근한 외계인’이라는 매력적인 별명만큼이나 공상과학 영화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유쾌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건물이 동과 서로 나뉘는 지역 불균형 발전을 해소하는 경제?사회적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역할을 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존 레논, 폴 메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와 같은 걸출한 뮤지션들을 배출한 영국 북서부 도시, 리버풀. 항구도시로 유명했던 리버풀이 문화예술의 중심지, 앨버트 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저자는 쇠락한 항구도시의 모습을 벗고 테이트 리버풀 미술관, 비틀스 스토리와 같은 문화 시설을 유치함으로써 문화 도시로의 도약을 꿈꾼 리버풀의 모습에서 그들만의 자긍심을 발견한다.
‘발상의 전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다’에서는 다섯 개의 도시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물을 통하여 도시의 정체성을 창조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현대도시에서 랜드마크로 여겨지는 이름난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무척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의미 있는 랜드마크가 단순히 최첨단 기술이나 파격적인 모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의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를 어떻게 평가할까. ‘히틀러의 나라’라는 씻을 수 없는 멍에를 안고 있는 독일은 2005년, 수도 베를린 심장부에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세우면서 전 세계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독일 자신의 후손에게 역사를 정확히 돌아보게 하고, 판단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큰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무겁지도, 거대하지도 않은 느낌으로 담담하게 서 있다. 저자는 아이들이 한가롭게 추모비에 앉아 주스를 마시는 모습, 연인들이 팔베개를 하고 추모비 위에 다정하게 누워 있는 모습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되, 지나치게 근엄하거나 형식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건립 의도를 엿본다.
냉전 체제 아래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자리한 댄싱 하우스는 열정적으로 춤추는 한 쌍의 남녀를 연상시킨다. 물이 춤춘다면 이런 모습일까.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알리기 위한 하벨 대통령의 바람과 독특한 디자인 세계를 갖고 있는 프랭크 게리 그리고 건축가 밀루닉, 세 사람의 열정이 ‘프라하의 춤추는 봄’을 탄생시켰다. 동유럽의 자유를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댄싱 하우스의 날렵한 모습은 주변 고전건축물의 투박함과 어울려 새로운 체코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다.
‘건축, 녹색의 향기를 머금다’에서는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친환경 건축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물을 살핀다. 위치는 물론이고 온천, 묘지, 공동주택, 박물관으로 기능은 모두 다르지만, 건축, 자연,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 유럽을 확인할 수 있다.
삐뚤빼뚤한 선과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 사는 주민들은 편안하고 행복하다. 자로 잰 듯한 획일적인 모습이 아닌 녹색으로 가득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수많은 음악가가 활동한 예술의 도시, 빈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건물이다. 인간적인 건축, 자연을 닮은 집을 모토로 한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이 건물은 당시 도시 주택 문제로 딜레마에 빠진 빈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삶의 질과 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유럽 공동주택의 화려한 변신이 놀랍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국 런던의 베드제드는 현재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친환경 디자인 원리를 적용하고, 화석 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영국 최초의 친환경 주거단지, 베드제드. 공동주택임에도 단독주택의 장점을 고스란히 유지해, 아담한 앞마당과 정원, 자유롭게 거닐며 이웃과 이야기할 수 있는 단지와 단지 사이의 골목길이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지붕에 늘어서 있는 닭 벼슬 모양의 굴뚝들은 실내 공기와 온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재미난 형상으로 베드제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동녘 출판사 201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