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연재 1] 독터후와 셜록 홈즈의 도시

시각연재_김정후 박사의 도시일기∙도시읽기_1

독터후와 셜록홈즈의 도시
김정후ㅣ런던대학UCL 지리학과
『시각』은 이번호부터 건축가이자 도시사회학자로, 도시학, 사회학, 지리학을 넘나들며 도시와 건축의 본질을 탐구하며, 특히 ‘뒤집어보기, 다르게 보기, 바르게 보기’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탐구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김정후 박사의 도시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사유를 나눠볼 수 있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꼭지명은 ‘도시 일기ㆍ도시 읽기’로, 이름 그대로 도시 일기의 형식으로 도시를 읽으며, 도시와 건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주변 현상으로 도시를 살펴볼 계획이랍니다. 멀리 영국의 런던에서 직접 전해오는 따끈한 글을 이제 인천에서 가장 먼저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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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itish Film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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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ilymail

올 겨울 영국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화두 이상으로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한 두 가지 큰 일이 있었다. 하나는 1963년 겨울에 첫 회가 방송된 이후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드라마인 ‘독터후(Doctor Who)’가 5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였고, 또 다른 하나는 2010년부터 파격적인 이야기 구성으로 새롭게 선보인 탐정 드라마 ‘셜록 홈즈(Sherlock Homes)’의 세 번째 시리즈도 다시 시작했다. 모두 영국을 대표하는 국영방송인 비비씨(BBC)가 제작했다.
독터후와 셜록 홈즈는 영국의 ‘창조산업’과 긴밀하게 연계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영국은 이론적, 실제적 측면에서 명실공히 세계의 창조산업을 선도하는데 20세기 후반부터 13개 분야를 전략적으로 설정해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광고, 건축, 예술 및 고전, 컴퓨터 게임, 공예, 디자인, 의상, 영상, 음악, 공연예술, 출판, 소프트웨어,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이다. 이와 같은 13개 분야는 사실 특별하다기 보다 영국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분야라 할 수 있다.
13개 중에서 과연 어느 분야가 특히 성공적일까? 경제적 측면 외에도 다양한 평가 기준이 존재하므로 절대적 순위를 매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단연 텔레비전 드라마 부문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국 정부와 비비씨가 발표한 각종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영국이 드라마 제작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그야말로 천문학적 액수에 달한다. 드라마 자체는 물론이고, 연관된 제품 제작과 각종 로열티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드라마 부분을 으뜸으로 꼽는 이유는 드라마 제작을 통하여 벌어들이는 수입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효과’ 때문이다. 효과는 다름 아닌 거시적으로는 ‘영국’, 미시적으로는 ‘도시’에 대한 홍보를 말한다. 1963년에 시작한 독터후는 상상을 초월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1989년까지 절찬리에 방영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논의를 진행한 끝에 2005년부터 새로운 에피소드를 제작하여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새로운 독터후는 지난 40여년 동안의 독터후와 이야기 전개의 큰 흐름은 유사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드라마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도시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독터후는 영국 도시, 특히 런던의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따라서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런던의 모습, 문화, 삶을 구석구석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한다.
도시 홍보의 측면에서 셜록 홈즈는 독터후를 능가한다.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 1887년부터 썼던 소설 속 주인공인 셜록은 그 동안 각종 미디어를 통하여 주기적으로 되살아나곤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셜록이 마치 실존 인물이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소설, 영화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 그가 살았던 집인 ‘베이커 스트리트 221B(221B, Baker Street)’는 런던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다. 오늘날 이 집은 특별하지 않지만 런던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음으로써 수 많은 관광객이 찾는 것은 물론이고, 매년 전 세계로부터 수사를 의뢰하는 수백 통의 편지가 배달될 정도다! 이 뿐만이 아니다. 탐정 드라마의 특성상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은 필수다. 따라서 셜록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모습은 철저하게 런던을 주 배경으로 삼았기에 드라마는 마치 한 편의 거대한 런던 홍보 영상을 방불케 한다. 승용차를 운전하는 대신에 늘 타고 다니는 검은색 미니캡, 그리고 차창 밖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의 풍경은 모든 시리즈를 구성하는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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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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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ert Viglasky
바로 이것이다. 비비씨는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드라마의 제작으로 21세기 런던이 추구하는 핵심 창조산업 분야 중의 하나인 영상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것과 더불어 지극히 영국적인 상황과 배경에 기초한 드라마를 통하여 영국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알리는데 성공했다.
독터후와 셜록 홈즈가 몰고 온 도시에 대한 긍정적 영향은 한 가지 더 있다. 독터후와 셜록 홈즈는 런던이 아닌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에 자리한 비비씨 방송국에서 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카디프는 영화, 음악, 무대, 장식 등의 연관산업이 동시에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고, 영국 영상 관련 산업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핵심 도시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조만간 런던을 능가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독터후와 셜록 홈즈에서 촬영 배경으로 등장한 카디프의 몇몇 장소들을 찾는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두 드라마가 다시 시작하기 전과 후에 웨일즈 전체의 관광객 숫자에 변화가 생겼다는 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인가.
독터후와 셜록 홈즈의 공통점은 둘 다 실존하지 않는 상상 속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역사 속의 실존 인물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강한 존재감을 지닌다. 그 이유는 실존하는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매우 사실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영국이 21세기에 추구하는 창조산업 발전 전략에 기초한다.
도시건축 전문가로서 독터후와 셜록 홈즈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것은 주제 넘은 일일 듯싶다. 그러나 드라마를 통하여 도시를 소개하고 알리는 효과에 있어서 독터후와 셜록 홈즈는 한 마디로 탁월하다.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파생되는 부수적 효과는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다. 두 드라마가 헐리우드에서 제작해 일순간 전 세계를 들썩일만한 블록 버스터 영화는 아니지만 그 영향은 몇 배, 아니 몇 십 배에 달한다. 이보다 얼마나 더 창조적일 수 있나?
김정후 박사 201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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