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속가능한 도시발전 모델로서의 런던 올림픽

[건축신문 3호 특집 칼럼] 

지속가능한 도시발전 모델로서의 런던 올림픽

 
 
올림픽, 구원투수일까 방화범일까?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대망의 제1회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인류 평화의 대제전’이라는 구호 아래 전 세계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진정한 화합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러나 불과 몇 회가 지난 후부터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6회(1916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12회(1940년), 13회(1944년) 대회가 연달아 무산되었고, 22회(1980년) 모스크바 대회는 자유진영이, 반대로 23회(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이 불참함으로써 올림픽의 대의명분은 크게 퇴색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4회(1988) 서울 올림픽이 새로운 희망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념의 장벽을 넘어 다시 전 세계가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 흐름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 올림픽부터는 인류 평화의 대제전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의미 보다 ‘도시간 경쟁’과 ‘도시 마케팅’의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이는 20세기 후반부터 도시 경쟁력이 국가 발전의 핵심으로 등장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약 2주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를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올림픽은 효과적인 도시 홍보 수단으로 부각되었다. 따라서 올림픽은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 더욱 매력적이라 할 수 있고,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유치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자 도시 전문가들 사이에서 베이징 올림픽이 기존과 같은 형식의 올림픽으로는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올림픽이 단기간에 경제 발전을 위한 원동력을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다. 올림픽과 경제의 관계를 언급한 어떤 자료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지만, 2000년 이후 개최된 시드니, 아테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이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적자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무려 70조의 예산이 투입된 베이징 올림픽의 적자 규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벌어질 정도다. 물론 올림픽이 단기간의 직접 수익보다 이후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다양한 경제유발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올림픽과 경제의 함수관계를 단순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경제 효과에 대한 불확실함과 더불어 기존 방식의 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현재 세계 도시들이 추구하는 방향도 한 몫을 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은 ‘지속가능성’을 도시발전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이를 강도 높게 실천하는 중이다. 지속가능성은 ‘환경’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 개발 모델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볼 때, 고작 2주 동안 벌어지는 행사를 위해 몇 년에 걸쳐 대규모 스포츠 및 사회기반 시설을 건립하는 올림픽이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군다나 앞서 올림픽을 치른 여러 나라들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가 새롭게 건립한 시설을 이후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올림픽이 끝나고 며칠 동안의 화려함을 뒤로 한 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경기장들과 딱히 활용 가치가 없는 시설들은 올림픽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한다. 올림픽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 발전에 역행할 수도 있다는.
두 개의 바퀴, 지속가능성과 올림픽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면서 위원장인 세바스찬 코는 “우리는 더 이상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 이벤트가 아닌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적어도 이전까지 100년 넘게 열렸던 올림픽들이 유사한 목표와 과정을 거쳤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 변화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 같은 접근은 앞서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 개최된 베이징 올림픽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 보다 차별화를 꾀하려는 현실적 전략도 담겨있다. 세바스찬 코가 강조한 지속가능한 올림픽은 특정 분야를 넘어서 ‘환경적•경제적•사회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으로써 도시발전을 위해 올림픽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런던이 야심 차게 수립한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실현하려는 의지는 개최 지역으로 런던 동쪽 리 강 유역의 스포라트포드를 택한 것에서 읽을 수 있다. 이미 1908년과 1948년에 두 차례 올림픽을 치른 런던은 굳이 새로운 장소를 개발하지 않아도 충분히 활용가능한 스포츠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은 왜 동쪽의 버려진 공업지역을 택했을까? 올림픽 유치 전략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비록 50여년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다 해도 한 도시가 세 번이나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다시 말해 두 번의 경험은 장점인 동시에 한계이다. 특히, 2012년 올림픽의 경우 터키의 이스탄불, 스페인의 마드리드, 러시아의 모스크바, 미국의 뉴욕, 프랑스의 파리,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등 유난히 이름값이 높은 도시들이 대거 유치 경쟁에 뛰어든 상태였다.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런던이 꺼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이후 기후변화협약(1992년), 교토 의정서(1993년) 등을 필두로 다양한 공동실천방안을 마련했다. 아마도 현대사에서 전 세계가 이념이나 자국의 이익을 떠나 가장 강력한 공조체계를 수립한 유일한 사례일 듯싶다. 이러한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은 영국이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지속가능한 개발을 국가적 아젠다로 설정하고, 가장 혁신적으로 실천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영국이 지속가능성의 선두 주자로 자연스럽게 부상함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엄청난 예산과 대규모 개발이 필요한 올림픽이야말로 지속가능성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런던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녔다. 그리고 런던은 낙후된 스트라트포드 지역을 등장시켜 실천적 의지에 방점을 찍었다. 이것이 결국 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일련의 올림픽 준비 과정이 거침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런던이 올림픽과 무관하게 이전부터 21세기를 준비하며 치밀한 ‘동진정책’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기존의 런던에서 벗어나 동쪽을 개발해 런던의 점진적 성장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즉, 스트라트포드는 올림픽을 위하여 뜬금없이 등장한 지역이 아니라 런던의 미래를 위한 전진 기지로써 오래 전에 낙점된 상태였고, 여기에 지속가능성과 올림픽이라는 두 개의 바퀴를 정교하게 끼워 넣었다.
구호가 아닌 실천
지속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워 세 번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런던은 다섯 가지 구체적인 주제를 설정했다. ‘기후변화, 폐기물, 생물의 다양성, 포용, 건강한 삶’ 등인데, 런던은 이를 또 다른 도전을 향한 게임이라 천명했다. 주목할 점은 앞서 강조했듯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같은 내용은 영국이 자랑하는 국가∙광역∙지역 정책을 통해 핵심 개념이 이미 충분히 정립된 상태였다.
초기 단계에서 세심하게 접근한 것은 낙후된 공업지역에서 나온 각종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폐기물 제로’ 건설이다. 올림픽과 무관한 기존의 노후한 건물과 시설을 포함해 도저히 활용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진 각종 산업 폐기물을 90 퍼센트 가까이 재활용했다. 사실 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수치로써 대규모 재개발을 시행할 때 부지 내의 기존 시설과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의미가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극심하게 오염된 약 200만톤의 흙을 첨단 과학과 기술을 활용해 세척해 재사용했고, 이 때 사용한 물은 다시 정화해 호수에 활용했다. 이 같은 방식은 시민들로부터 커다란 호응과 찬사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주경기장에 사용된 구조물은 해체 후에 여러 개의 소규모 경기장을 위해서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했고, 총 8만석 규모의 올림픽 주경기장 좌석의 경우 2만5천석을 제외하고 모두 해체하여 필요에 따라 재사용이 가능하다. 일명 ‘메카노 경기장’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림픽 주경기장이 올림픽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라는 점에서 지어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었으나, 그러한 접근이야말로 명분만을 쫓고 시대에 역행하는 방식이라 일축했다. 농구와 핸드볼이 열리는 경기장은 한 발 더 나아가서 경기가 끝난 후에 해체하여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다시 사용할 계획이다. 전무후무한 올림픽 경기장 자체를 수출하는 셈이다.
한편, 운영의 측면에서도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고, 사전에 철저하게 분석해 각종 화물 및 자재 운송 동선을 최소화하고, 매우 높은 수준의-그러나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자체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정해 실행함으로써 그야말로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교과서로 평가 받는다. 이쯤 되면 올림픽 준비 과정이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 못지 않게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라 할만 한다.
사회적 맥락은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흔히 간과하거나 뒷전으로 밀려나곤 한다. 런던시는 올림픽을 위해서 새롭게 건립하는 사회기반 시설이 올림픽 자체보다 장기적 맥락에서 스트라트포드를 포함해 런던의 동부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사회 기반 시설 및 주택을 공급하는 세밀한 계획과 더불어 올림픽과 연관해서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영속적일 수 있는 지역의 일자리 창출 계획도 수립했다. 그 동안 세계 최고의 도시인 런던에 속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이 아니라고 여겼던 시민들의 생각과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올림픽으로 인한 사회적 혜택을 자신들이 제일 먼저 누린다는 확신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올림픽 단지의 일부로 조성된 친환경 공원은 최고의 녹지 도시인 런던에 살면서도 이를 전혀 실감할 수 없었던 지역 주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 제전을 넘어
지난 2007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지구환경시민상 수상자로 발표되었고, 뉴욕에서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이 때 영국의 데이비드 밀리밴드 환경부장관은 “지구 환경보호에 공헌한 이유로 상을 받기 위해 런던에서 뉴욕까지 7천 마일을 날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왕세자를 비판했고, 많은 환경단체들이 그의 지적에 동조했다. 이 일은 이후 여러 사람들에 의해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오늘날 기후 변화로 인하여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 방식은 여전히 요란한 구호에 그치거나 생색내기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모델이 되지 못한다면 단순한 스포츠 축제에 불과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갖는 중대한 상징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런던 올림픽의 진정한 성공 여부는 런던이 올림픽을 준비하고, 시행하고, 사후 관리하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높은 수준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했느냐에 달렸다. 이를 통하여 지속가능성의 교훈을 전 세계에 전한다면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 제전을 넘어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김정후 박사 20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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