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벤치마킹 수준을 높이자

문화, 창조, 녹색…
도시 어젠다가 앞뒤 가리지 않고 유행만 좇고 있다.
벤치마킹은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경쟁 회사의 장점을 배워서 응용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나라와 문화의 경계가 흐려진 오늘날 벤치마킹은 더이상 경영 분야의 전유물이 아니다. 선도적인 기업·인물·디자인에 대한 벤치마킹은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용어와 형식이 다를 뿐 오래전부터 벤치마킹의 원리가 깊이 뿌리내린 분야는 도시와 건축이다.
최근에는 단순히 디자인, 기술, 재료 사용 등을 넘어 도시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는 추세다.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도시 어젠다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깊이 있는 이해나 내용 없이 단지 구호만 좇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십여년 동안 우리나라 지도자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 내세운 주요 도시 어젠다를 한번 나열해 보자. 문화도시, 지속가능한 도시, 창조도시, 르네상스, 공공디자인 그리고 최근의 녹색성장까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드러난 모순은 십여년 전에 문화도시를 외치더니 불과 몇년 만에 창조도시를,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슬그머니 녹색성장을 들고나온다는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유행을 좇고 있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어젠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간판만 계속 바꿔 달고 구호만 요란할 뿐 수준 높은 변화를 이끄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이야기하자. 지난해 한 지방자치단체의 자문에 그 지역에 적합한 목표와 방법을 제시했는데, “좋기는 한데 무조건 녹색으로 가자!”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거두절미하고 녹색이어야 한다는 발상은 얼마나 무지하고 무모한가.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벤치마킹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따라서 바람직한 벤치마킹을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널리 알려진 사례를 깊이 있게 분석하자. 벤치마킹은 보물찾기가 아니다. 벤치마킹을 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그 사례는 이미 다 아는데!”라는 식의 표현을 종종 한다. 정말 그럴까? 벤치마킹은 남들이 모르는 기막힌 무엇인가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성공 사례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다. 경영학에서는 벤치마킹이 성공하려면 최종적으로 자기 회사의 상황에 맞게 벤치마킹에서 얻은 원리를 수정해 접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지적은 도시의 벤치마킹에서 더욱 유효하다. 아무리 세계화가 되었다 해도 도시는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벤치마킹이 단순한 모방 차원을 넘어서려면 관찰과 분석의 깊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둘째, 실패를 벤치마킹하자. 어느 도시도 실패를 염두에 두고 개발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도시 개발은 성공보다 실패한 사례가 훨씬 더 많다. 벤치마킹의 묘미는 다른 도시의 성공을 동일한 형식으로 옮겨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유사한 시행착오를 피해야 한다. 실패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곧 성공 확률을 높이는 지름길인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공 사례의 벤치마킹에만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실패에 무지하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도시와 연관해 범하는 오류는 정보를 지식으로, 그리고 단순한 사례조사를 벤치마킹으로 오판하는 것이다. 도시는 수많은 유·무형의 요소들 간의 다차원적 관계로 구성된다. 본질을 꿰뚫는 벤치마킹 없이는 껍데기뿐인 경박한 도시를 양산할 따름이다.

한겨레신문 201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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