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복원을 남용하는 사회

복원은 또다른 ‘파괴’를 부르고
원본이 지닌 의미를 왜곡한다
남용하면 도시의 역사가 멈춘다
복원은 물리적으로 손상된 대상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기법이다. 컴퓨터, 자동차, 가구 등의 실생활에서 널리 통용되고, 고고학, 미술, 사진, 생태학과 같은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유용한 작업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복원의 개념이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온 분야는 바로 도시와 건축이다. 왜냐하면 전쟁이나 사고 혹은 부실한 관리로 파괴되거나 소실된 도시와 건축의 흔적을 복원하는 일은 시대를 불문하고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이상적인 상태로 건조 환경을 되돌린다는 점에서 지도자들은 복원을 시민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관심을 이끌어내는 매우 유용한 도구로 여긴다.
여기에 복원의 함정이 있다. 오랜 복원의 역사와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의 선진국 전문가들은 도시와 건축 분야의 복원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복원이 오히려 도시와 건축의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기술적으로 완벽한 복원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사실은 물리적 복원을 통해 해당 시기의 사회적·문화적·정신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시와 건축은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점에서 생명체와 유사하다. 복원에 앞서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 우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생활 속에 자리한 도시와 건축이 생명체와 유사함은 그 생명력이 유한함을 동시에 의미한다. 따라서 보호란 그 대상을 박제화해서 박물관의 소장품처럼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변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폐허의 유적이 여전히-혹은 영원히- 역사적 가치를 갖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원을 너무 쉽게 주장하고 시행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특정 지역 전체에서 마을, 공원, 하천, 거리, 건물, 동상 등 대상도 무척 다양하다. 국민적 정서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일부 추종자들이 특정인의 생가를 복원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할 지경이다.
복원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복원이 또다른 ‘파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졸속으로 시행된 청계천 복원으로 말미암아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훼손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복원이 야기하는 파괴의 부정적 영향은 그 이상이다. 충분한 고증, 연구, 논의가 없이 이루어진 복원은 오히려 원본이 지닌 의미를 왜곡하여 올바른 판단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곤 한다. 즉 문헌상으로 그 의미를 충분히 새기고 전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조악한 복원은 결국 역사를 덧칠하는 행위인 셈이다.
복원은 한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다. 수백 조각 난 유물과 유적을 하나하나 맞추어 원형을 복원하는 일은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러나 향수와 낭만 혹은 관광산업 진흥이나 지역의 자존심 회복이라는 구태의연한 발상에 기댄 막무가내식 복원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얼굴을 복원한다’는 표현은 사고나 질환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환자가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신성한 의료행위다. 그러나 이것이 미용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지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위한 얼굴 복원이 내면의 아름다움과 무관한 것처럼,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도시와 건축의 복원 또한 우리 사회의 깊이와 관록을 드러낼 수 없다. 반대로 수준 낮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복원을 남용하면 도시와 건축의 역사가 멈춘다!
20120504  김정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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