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박원순의 ‘마을’에게

마을만들기 좋다, 환영한다
한데 충분한 정책과 인력은?
‘런던계획’을 참고해 보자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언론사들이 서울시의 도시정책을 비판하는 칼럼을 요청하곤 했다. 전임 오세훈 시장은 소프트 시티를 핵심 어젠다로 삼고 공공디자인을 시정의 전면에 내세웠다. 기능과 효율, 건설과 산업, 자동차 중심, 전통이 단절된 도시 패러다임을 하드 시티로 규정하고, 이를 개선할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불행하게도 실질적 실행에서 도시의 외형을 치장하는 데 지나치게 천착함으로써 소프트 시티가 추구하는 본질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박원순 시장의 등장과 함께 현재 서울시에는 다시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소프트 시티와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에 마을 만들기를 필두로 몇몇 새로운(?) 개념들이 채워지고 있다. 리더가 바뀌면 차별화를 목적으로 변화가 뒤따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예외도 있어야 한다. 믿건대 도시계획이 그렇다.
예를 들어 보자. 전문가들이 현대 도시계획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하는 ‘런던계획’은 전임 켄 리빙스턴 시장이 2004년에 수립한 종합개발계획이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2008년 선거에서 보리스 존슨 현 시장에게 패했다. 둘은 각각 노동당과 보수당 출신으로 정치적 노선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선거 이전부터 도시와 관련된 많은 정책에서 생각을 달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 시장은 당선 후 2009년에 기존 런던계획의 일부를 수정했고, 작년에 새롭게 보완한 런던계획을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전임 시장이 수립한 정책을 거시적으로 계승하며 부족한 측면과 본인이 역점을 두는 부분을 추가했다는 사실이다.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가 직면한 도시 문제에 대처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패러다임으로서 설정한 소프트 시티는 여전히 유효하다. 분명히 지적할 문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제적 정책이 어설픈 개념들의 백화점식 짜깁기로 구성되었다는 데 있다. 따라서 기존 정책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깊이와 각론을 더하는 지혜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런던의 예에서 확인하듯 좋은 정책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끊임없는 수정을 거듭한 뒤에 비로소 자리잡기 때문이다. 즉 정책은 절대로 혜성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관심의 크기만 놓고 보면 현재의 마을 만들기는 공공디자인 못지않다. 마을 만들기가 지역 커뮤니티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관심과는 별개로 서울시가 마을 만들기를 위한 충분한 정책과 인력을 보유했는지, 더불어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점은 용두사미로 전락한 공공디자인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시행될 수 있는가이다. 점차 커지는 마을 만들기에 대한 현장의 고민과 우려는 유독 필자에게만 들리는 메아리는 아니리라.
현대 도시계획의 성패는 정책과 디자인의 조화에 달렸다. 목표와 방법이 다르지만 공공디자인과 마을 만들기는 모두 디자인에 해당된다. 따라서 마을 만들기가 실패한 도시계획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디자인을 이끌 정책 마련이 우선돼야 하고, 이를 토대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배는 바다로 출항했으나 선원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선장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위기상황이 닥칠 수 있다. 더불어 지방 도시들이 무비판적으로 서울을 따르는 전통을 고려할 때 박원순호의 길잡이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마을에 앞서 정책을 디자인하라!
 
20120302  김정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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