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융합의 시대와 마주한 건축

건축계의 융합이 바라는 것은 건축-건설의 만능인이 아니다.
삶을 담을 성찰이 필요하다… 
20세기가 학문과 실무를 가리지 않고 개별 분야를 더욱 세분화해서 깊이를 더했다면, 21세기는 여러 분야를 다시 다양하게 결합하는 ‘융합의 시대’다. 그러나 융합의 본질이 각기 다른 분야를 단순히 물리적으로 묶는 것을 넘어서 화학적 개념의 통합을 의미하므로 쉬운 과정이 아니다. 특히 융합의 핵심 대상인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나름의 견고한 뿌리와 방법론을 발전시켜 왔으므로 교류는 활발할 수 있지만 융합은 여전히 큰 도전으로 남아 있다.
한편 건축과 융합의 관계는 무척 흥미롭다. 굳이 르네상스 시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현대 건축 역사에서 분야 간 경계를 오가며 활발하게 융합적 사고와 작업을 한 인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를 들어 독일의 구조 전문가 프라이 오토는 생물학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구조 디자인을 탄생시켰고,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는 인체와 동물의 뼈대 구성 원리를 탐구하여 디자인에 접목했다. 이렇게 볼 때, 용어 사용의 차이가 있을 뿐 건축은 본질적인 특성상 이미 오래전부터 융합적 토대를 갖추고 그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따라서 접근하기에 따라 다른 분야의 융합 논의를 선도할 수 있는 잠재력까지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 건축 분야의 융합은 어떻게 진행중일까?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건축과 엔지니어링의 융합, 건축과 첨단 기술의 융합, 건축과 관련 산업 및 디자인 분야의 융합 등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우리나라 건축 분야의 융합 논의가 본질적 개념에서 벗어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융합은 각기 다른 분야-특히 자연과학 혹은 공학과 인문학-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통해 연결고리를 찾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분야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비추어 볼 때 건축에 엔지니어링, 첨단 기술 그리고 관련 디자인 분야를 묶는 방식을 융합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더 나은 건조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건축과 관련 분야들의 협력관계를 긴밀하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의미있고 필요한 작업이나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융합의 핵심과 거리가 멀다.
이러한 접근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융합을 구성하는 한 축인 인문학과의 교류가 뒷전으로 밀린다는 점이다. 건축에 불어닥친 융합의 바람은 천박한 자본주의에 밀려 오랫동안 간과했던 인문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접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단순한 기술로까지 전락한 건축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음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의 상황은 이런 기대를 무색하게 만든다.
어설픈 융합으로 탄생할 융합적 인재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디자인, 시공, 기술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건설 전반을 아우르는 만능인.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융합을 통한 전문가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융합의 저변에 깔린 기대는 학문 간의 넘나듦을 통해서 새로운 분야가 탄생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건축계에서 현재 진행중인 융합 논의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문적 지식과 소양을 키우지 못한 만능인은 건축을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닌, 단지 ‘사람을 담는 그릇’으로 치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융합의 시대에 건축이 직면한 과제다.
20120210  김정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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