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건축의 빗장을 여는 방식

“요즘 아시아에 건물 한두개쯤
디자인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밀어!”
지리학자 이언 고든이 강조했듯이 현대 도시는 다양한 방식의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데, 도시 간 경쟁에 건축은 중요한 도구이자 평가 기준이다.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도 많은 외국 건축가들이 건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대가들이 훌륭한 건물을 디자인함으로써 도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런 현상은 사실상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결국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 건축의 빗장을 여는 것이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열 것인가’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빗장을 열면 반대급부로 그만큼 우리 것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에 건물을 디자인한, 일반인에게조차 낯설지 않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이름을 몇 명만 거론해 보자.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 대니얼 리베스킨드, 리처드 로저스, 자하 하디드, 도미니코 페로….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상황이다. 몇해 전에 참여했던 국제 콘퍼런스에서 “요즘 아시아에 건물을 한두개쯤 디자인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밀어!”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던 영국 중견 건축가의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비판적 맥락에서 지난 10여년 동안 대가들이 디자인한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고민의 깊이와 결과물의 수준은 어떠한가. 두가지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지역의 특수한 상황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건축적 개념을 강요하고, 둘째는 유치할 정도로 어설프게 한국적 개념을 차용하거나 접목한다. 각기 다른 경우이지만 우리의 기대와 거리가 멀기는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러한 기이한 과정을 통해 아이러니한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국내 건축 전문가들은 기대 이하의 작품을 남긴 대가들에 실망하고, 그들은 한국이 좋은 작품을 하기 어려운 수준 낮은 사회 시스템을 가졌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결국 우리도, 그들도 모두 만족하지 못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모순에 빠진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도시는 국적불명의 정체성으로 점철되어 간다.
지리학자 제니 로빈슨은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건물이 지어지는 오늘날 도시·건축·정책 전문가들이 다른 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본질을 확인 및 분석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로빈슨의 언급을 통해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와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동시에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사회적·공간적 상황과 무관하게 유명한 건물 자체와 그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의 명성에 초점을 맞출 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들어와서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에 둔감하다. 그러다 보니 졸부와 장사꾼 그리고 몇몇 무책임한 건축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비즈니스에 능통한 대가를 끌어들이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다.
대가일지라도 아무 데서나 대작을 남길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이 가진 디자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식에 더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반대로 엄청난 설계비를 챙기고 적당히 타협하는 대가들을 강도 높게 비판해야 한다. 이것이 건축전문가들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치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어떤 건축 집단이 이 땅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건축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건축의 빗장이 다 열린 것이 아니다. 모순된 방식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대안을 고민하고 제안해야 한다. 이것이 곧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한겨레신문 201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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