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이름값과 실력값

용산국제업무지구 설계에 한국인 빠져
역사성 살릴 논의도 덩달아 사라져…

지난 한달 동안 한국 건축계는 침통함에 휩싸였다. 서울 용산에 건립할 예정인 국제업무지구를 설계할 19팀이 발표되었는데, 단 한 명의 한국 건축가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한국 건축의 디자인 수준과 국제적 위상을 논하는 것 이상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먼저 비교 가능한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994년 런던에서는 21세기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자리잡게 될 테이트모던 현상설계 심사가 한창이었다. 예심을 거친 13팀이 최종 경합했는데, 그중 영국팀 7개, 외국팀 6개가 포함되었다. 외국팀 중에는 안도 다다오, 렘 콜하스, 렌초 피아노 등 당대 최고 건축가들이 눈에 띈다. 테이트 재단과 심사위원들 간의 격론 끝에 합의한 최종안의 선정 방향을 니컬러스 세로타 관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는 스타 모시기나 미인 선발대회를 하는 것이 아니다. 런던은 물론이고 주어진 부지 상황과 조건을 철저히 이해하고 우리와 긴밀히 협업할 건축가가 필요하다.” 예상을 깨고 영국 건축가도, 세계적 대가도 아닌 무명에 가까운 스위스의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이 최종 승자가 된 배경이다. 이 결과는 심사위원단이 이름값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최상의 디자인을 선정했음을 시사한다.
이제 용산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용산국제업무지구는 국내 컨소시엄에서 현상설계 대신에 대가들을 지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는 시행 주체가 대가들의 이름값에 철저히 의지했음을 뜻하는데, 이 같은 형식을 딱히 비난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로 인해 지명된 건축가들이 서울과 용산을 이해하려는 치열한 경쟁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데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 건축가들의 참여와 경쟁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다양한 역사의 켜와 장소성을 지닌 용산에 대해 외국 건축가들과 한국 건축가들이 머리 맞대고 논의할 절호의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건축의 이름값과 실력값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이름값보다 더 실력이 앞서는 경우, 이름값만큼 실력을 보이는 경우, 이름값에 실력이 못 미치는 경우다. 외국 건축가들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건물을 설계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러면 이 중에서 이름값 혹은 그 이상을 실현한 사례는 얼마나 될까. 대다수가 이름값에 미치지 못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그들이 선정되지 않았고, 깊이 있는 논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대가나 건축을 막 시작한 새내기나 아이디어를 통해 경쟁하는 것은 건축의 기본이다. 경쟁 없이는 제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라 할지라도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만큼 치열하지 않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설계비를 주는 프로젝트에 왜 우리는 안 끼워주느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서울시, 개발업자, 한국 건축가 그리고 기타 관계자들까지. 누구 하나 구분지을 필요 없이 용산을 최고 수준의 장소로 만드는 것이 공통된 목표다. 그러나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위한 건축가 선정 작업은 도시와 장소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혹은 않아도 된다는- 전근대적 행태를 드러냈다. 발주자도, 한국 건축가도, 서울 시민도 모두 패자다.
유일한 희망은 승자인 19팀이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로 좋은 결과물을 선보이는 것인데, 외국 땅에 무혈입성해 해당 국가의 건축가와 긴밀한 협조 없이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그들 또한 승자로 남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한겨레신문 20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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