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브랜드와 문화 프랜차이즈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도시 재생사업이 전 세계의 주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주목할 점은 문화가 이를 위한 핵심적인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문화란 유형•무형의 것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지만, 도시 재생사업을 위한 문화는 주로 건축과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파리의 퐁피두센터, 빌바오의 구겐하임, 런던의 테이트모던 등은 전시 및 교육이라는 박물관의 고전적 역할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문화시설인 박물관이 경제적•사회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탈바꿈시키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소장품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21세기를 전후로 다시금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제적 인지도를 쌓아온 박물관들이 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즉, 박물관 브랜드를 활용하여 ‘문화 프랜차이즈’라는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여기에는 언론이 큰 몫을 했다. 몇몇 박물관들이 거둔 눈부신 성과들이 언론을 통하여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따라서 세계적인 박물관들의 분관을 유치한다는 것은 곧 ‘경제적•문화적 성공’을 담보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이와 같은 박물관 분관 유치 경쟁은 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는 많은 위험성과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를 주도하는 해당 박물관들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박물관 브랜드를 통한 문화 프랜차이즈 현상을 비판적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관광연구원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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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케팅과 문화 제국주의
문화가 마케팅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근의 문화에 대한 접근 방식을 적절히 설명하는 ‘3Cs’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문화(Culture)’, ‘커뮤니티(Community)’, ‘상업(Commerce)’을 일컫는다. 세 요소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문화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상업과 적극적으로 연계된다는 사실이다. 즉, 문화가 도시와 나라의 예술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경제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형적인 마케팅 용어인 ‘브랜드’가 문화에 직접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동시대적 논리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브랜드의 사전적 의미는 기업의 상표 혹은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케팅 전략에 따라 형성된 브랜드는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할 때, 그 판단을 상품의 질이 아닌 브랜드 자체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유발한다. 다시 말해 강력한 브랜드는 상품을 선택하는 데 그 어떤 조건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윤 추구를 위한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브랜드는 기업 브랜드(corporate brand), 제품 브랜드(product brand), 가치 브랜드(values brand)로 세분화될 수 있다. 최근에 박물관들에서 보이는 두드러진 현상은 훌륭한 소장품을 확보함으로써 방문객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휴식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박물관을 하나의 레저 시설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바탕에는 기존의 전통적인 박물관들이 일반 대중이 아닌 특정 계층만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한계를 안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는 마케팅 관점에서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박물관의 가치 브랜드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딱히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독자적인 노력으로 극대화된 박물관의 기업 브랜드를 직수입하는 것은 중간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껍데기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점에 있다. 더욱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점은 이렇게 브랜드화된 박물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브랜드화된 제품이나 기업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그 파급력의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문화는 특정한 지역 정서와 고유한 정체성을 기본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브랜드화된 문화시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브랜드화된 정서와 의식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을 중심으로 브랜드화된 문화가 직수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이 화두가 아닌 곳은 없을 듯싶다. 막대한 공적 자금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도시 재생사업은 전문가 집단이나 행정 주체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결정은 당연히 정치적 판단에 좌우된다. 20세기 도시 개발은 경제적 번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반면에 21세기 도시 개발은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번영을 동시에 추구한다. 문화가 빠진 도시 개발은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경제적 번영이 경우에 따라서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도 있음은 몇몇 사례들을 통하여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문화적 번영은 얘기가 다르다. 경제적 번영을 위하여 사용된 방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고, 시간 투자에 비례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문화적 번영을 동시에 성취하고 가시적 성과를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이미 성공한 문화브랜드를 직수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물관 브랜드사업은 문화선진국과 문화후진국 간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중동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결탁은 선진 사례의 벤치마킹이라는 또 하나의 그럴듯한 마케팅 용어로 포장되었기에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
박물관 브랜딩 선봉에 서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퐁피두센터
박물관 브랜드를 통한 문화 프랜차이즈 사업은 문화에 관한 한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프랑스가 가장 적극적이다. 그 선봉에는 루브르 박물관과 퐁피두센터가 있다. 프랑스는 20세기 후반부터 문화의 세계화라는 대외적인 명분을 앞세워 프랑스 문화의 영향력을 세계로 확대하려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큰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프랑스는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문화와 예술을 기반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경제력을 앞세운 미국의 등장, 문화적으로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베를린, 런던, 바르셀로나, 빈 등의 약진, 베일에 가려 있던 동유럽 국가들과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전면에 내세운 북유럽 국가들의 등장 등 다각도에서 문화 및 관광 대국의 지위를 위협받게 되었다. 따라서 프랑스는 이전까지 유지해왔던 자국의 문화·예술을 보호 및 개발하는 소극적 문화관광 정책에서 벗어나 이를 수출하는 적극적인 전략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 일환으로 박물관 브랜드를 통한 문화 프랜차이즈 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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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45만 점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조성되는 사디야트 문화지구에 ‘사막 루브르’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사막 루브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장 누벨이 디자인을 담당했다.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공간 8,000㎡를 포함한 연건평 2만 4,000㎡에 이르는 거대한 돔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이다. 이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시민, 사회, 문화, 예술 단체 등에서 강력한 비난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세계로 향한 문화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프랑스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재원 마련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단호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 아부다비는 단지 루브르 박물관의 이름을 사용하기 위한 로열티로만 약 5,000억 원을, 그리고 기존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 중 일부를 30년간 대여하는 데 약 7,000억 원가량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아부다비는 경쟁 도시인 두바이의 대약진으로 크게 위축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부다비는 두바이가 고층 건물과 대규모 개발에 집중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유사한 방식으로는 두바이와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문화를 통한 개발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사디야트 문화지구 내에는 루브르 박물관을 필두로 프랑크 게리의 구겐하임 박물관, 자하 하디드의 공연예술센터, 안도 타다오의 해양 박물관 등이 건립될 예정이며, 초특급 호텔과 각종 관광 시설들도 동시에 들어선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문화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완벽한 거래인 셈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문화 콘텐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세계를 압도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필요할 따름이다.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은 퐁피두센터는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중국 상하이에 분관 건립을 발표했다. 상하이 도심의 루완구에 지어질 예정인 분관은 기존의 근대 건축물 일부를 리노베이션하여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박물관을 건립하여 통합한다는 전략이다. 사막 루브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4,500㎡의 전시공간을 포함한 연건평 1만㎡로, 역시 만만치 않은 규모를 자랑한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상하이 분관의 경우 소유는 중국이지만 이후의 모든 운영과 프로그램의 책임을 파리의 본관이 맡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상하이 분관의 전시와 프로그램은 중국과는 전혀 무관하게 파리 본관이 주도한다. 퐁피두센터 상하이 분관이 유럽 문화의 아시아 진출 교두보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퐁피두센터의 상하이 진출이 프랑스 정부와 문화정책 당국자들의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임을 여러 정황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과 퐁피두센터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박물관이지만, 그 성향과 역할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루브르 박물관이 유럽의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유물을 주요 소장품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퐁피두센터는 20세기를 중심으로 한 현대 미술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아울러서 퐁피두센터는 전시장 이외에도 도서관, 극장, 교육 시설, 콘서트홀, 연구소 등의 다양한 시설들을 포함한 복합 문화센터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박물관의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퐁피두센터는 루브르 박물관에 비하여 훨씬 더 융통성이 있다. 퐁피두센터의 이러한 특성이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자부심을 가진 중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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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상업패권주의에서 문화패권주의로
박물관 브랜딩 사업 ‘빅 3’의 마지막 주자인 뉴욕의 구겐하임은 현재 전 세계를 상대로 박물관 브랜딩에 가장 적극적이다. 미국 내에서는 라스베가스에 분관을 설립했고, 스페인의 빌바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독일의 베를린에 분관을 설립하여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아부다비의 사디야트 문화지구와 멕시코시티에는 이미 분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런가 하면 토마스 크렌스 구겐하임 관장은 작년에 대만의 타이쭝,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 홍콩 등에 연이은 분관 건립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구겐하임은 1990년대에 대규모 전시공간 확장 공사를 진행했다. 이 때문에 상당한 빚을 떠안게 되었는데, 그 타계책으로 구겐하임 브랜드의 프랜차이즈를 계획했다. 이는 미국식 상업주의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빌바오 구겐하임이 그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빌바오 구겐하임은 ‘구겐하임=도시 성공’이라는 절대적인 등식까지 낳았다. 물론 이는 구겐하임 측의 홍보 전략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존의 뉴욕 구겐하임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분관들은 딱히 소장품이나 전시 종류에 특별한 정체성이 감지되지 않을뿐더러, 상업적인 전시들이 주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겐하임 측은 일본의 도쿄를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분관 건립 계획을 신청했지만 거절했음을 강조한다. 그만큼 구겐하임의 브랜드 가치가 높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구겐하임 분관 건립에 매우 적극적이다. 부산과 광주는 이미 수년 전에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유치단을 구성했고, 경기도, 대구, 인천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구겐하임 분관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공한 구겐하임이라는 브랜드를 그대로 이식하여 유사한 정도의 경제적·문화적 성공을 얻어보겠다는 수준 이하의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다. 초기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서 빌바오 구겐하임의 성공 신화가 바스크 지방정부의 오랜 기간의 치밀한 정책적 노력과 독특한 지역적 상황의 결과물임이 서구의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입증되고 있다. 그러므로 빌바오 구겐하임과 유사한 정도의 성공이 다른 도시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의견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겐하임 브랜드’와 ‘프랭크 게리의 스타성’이 도시를 획기적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후진적 문화정책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가 세계에 끼진 폐해를 비판하면서 맥도날드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단면인 획일화, 규격화의 상징이라 일갈한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퐁피두센터보다 구겐하임의 문화 프랜차이즈 사업이 더욱 위험해 보이는 이유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구겐하임 문화 프랜차이즈 사업의 출발점은 조지 리처가 비판하고 있는 맥도날드 정신에 가깝다. 내용보다 브랜드 자체를 필요로 하는 도시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문화를 여타의 상품과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점에서 문화를 다루는 이들이 가져야 하는 의식과 마인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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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프랜차이즈 사업도 격이 있어야
“건물 하나가 죽어가던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이제는 문화가 도시를 먹여 살린다.”
박물관 브랜드 및 문화 프랜차이즈와 연관해서 흔히 등장하는 선동적인 캐치프레이즈다. 기업이 사업을 통하여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윤 창출을 위하여 기업화된 대규모 박물관 역시 거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박물관은 ‘문화’를 도구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과는 다르며,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단순한 상품을 다루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 구겐하임 미술관을 문화를 상업화한다는 점에서 비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유명 박물관들의 브랜드만을 수입하려는 무모함과, 나아가서 맹목적으로 본관의 전시를 따르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교육을 받는 국민들의 문화, 예술, 역사 의식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화선진국이 진정으로 전 세계 문화의 상향 평준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지역의 가치를 존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반대로 문화후진국이 문화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눈앞의 화려함이 아닌 그들이 거쳐온 치열한 노력을 들여다봐야 한다.
* 본 원고의 저작권은 문화관광연구원 및 김정후 도시건축정책연구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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