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산업유산을 보는 지혜

산업유산을 도시 흉물로 간주해 철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얕은 안목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 우리 시대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는 깊은 지혜가 필요…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뉴캐슬의 발틱 미술관. 유럽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 건물들을 소개할 때 항상 뒤따르는 말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철도역, 테이트모던은 화력발전소, 발틱 미술관은 밀가루공장이었다! 문화예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창조적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도시 재생의 첨병 노릇을 한다는 점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고전건축에서 확인할 수 있듯 건물은 수백년 혹은 그 이상도 사용할 수 있다. 핵심은 구조나 재료의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관리하느냐에 달렸다. 유럽에서 산업유산이라 일컫는 대상은 통상 산업혁명 이후에 지어진 건물로, 약 200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 기차역, 발전소, 공장, 창고 등이 특별한 관심을 끈다. 이 건물들은 시민 생활과 경제발전을 위한 사회기반시설로서 대부분 도시의 요충지에 있고, 대규모인 경우가 보편적이다. 뒤집어 말하면 문을 닫고 방치된 산업유산은 주변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 건물들을 처리하는 것은 해당 지역의 발전을 위한 핵심이다.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왜 새로 짓지 않고 재활용인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몇몇 사례만 살펴보면 재활용이 새로 짓는 것보다 적은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이는 산업유산, 좀더 본질적인 맥락에서 옛것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다. 건축은 시대를 불문하고 당시 최고의 기술력을 반영하고,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공간을 창조한다. 그러나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증기기관차 역은 시속 300㎞를 웃도는 초고속 열차에 적합하지 않으며, 화석연료를 사용해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던 발전소가 친환경 시대에 환영받을 리 만무하다. 상식적으로만 판단하면,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산업유산은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며, 나아가 자부심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산업유산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은 한 사회가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며 발전한다는 의미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산업유산은 옛것을 바탕으로 새것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만약 오르세 미술관, 테이트모던, 발틱 미술관이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는 대신에 완전히 새로운 미술관을 지었다면 아마도 현재와 같은 개념과 아이디어를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기존 건물의 특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장점을 찾고 활용하려는 노력 속에서 독창적 형태와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테이트모던의 모태인 화력발전소를 디자인한 자일스 길버트 스콧은 발전소를 20세기 대성당으로 여기고, 그에 합당한 디자인을 접목하려 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화력발전소가 영원할 수 없음을 사전에 예상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15~16세기에 지어진 대성당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종교를 넘어선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음을 강조하며, 20세기 도시 발전의 주역인 발전소도 훗날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의 믿음처럼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화력발전소는 21세기 문화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빛바랜 벽돌, 때 묻은 콘크리트, 녹슨 철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변에 남은 산업유산을 도시의 흉물로 간주해 빠른 시간 안에 철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얕은 안목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 우리 시대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는 깊은 지혜다.

한겨레신문 20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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