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명품 도시론의 허구

도시계획은 기능과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조건을 수용해야 하므로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높은 수준의 창조적 조율 능력을 필요로 한다… 

얼마 전부터 ‘명품 도시’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대략 5~6년 전후라 여겨지는데, 이제는 대도시와 중소 도시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도시가 명품 도시화를 선언한 상태다. 도시의 실질적 수준을 떠나서 명품 도시가 전국에 넘쳐나는 시대다.

우리에게 익숙한 명품이란 단어는 본래 옷·구두·가방·장신구 등에 주로 사용하는데, 대부분 기능과 아름다움의 두 가지 측면이 조화를 이루며 최상의 품질을 지닌 경우라 할 수 있다. 명품에 내재된 또 한 가지 상징적 의미는 장인정신이라 할 수 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제품이 아무리 훌륭한들 명품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는 장인의 땀과 열정이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가내 수공업을 지향한 이탈리아가 다른 나라들보다 많은 명품을 보유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명품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닌 본질적 의미를 고려할 때, 명품 도시는 제품에 사용된 개념을 최고의 도시를 지향하는 접근 방식에 접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이해하면 명품 도시의 추구는 환영할 만한 일인데, 현실을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지 못하다. 명품 도시와 연관된 구호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최고의 박물관을 가진, 최상의 쇼핑거리를 갖춘, 최고의 아파트 단지를 보유한, 아름다운 간판이 즐비한, 충분한 주차 공간을 갖춘, 최상의 자전거도로를 확보한 명품 도시. 이와 유사한 정도의 개념을 담은 구호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근본적인 문제는 도시의 특정 부분을 개선하거나, 혹은 너무나 당연한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하는 것을 마치 특별한 것인 양 명품 도시라는 구호를 이용하여 그럴듯하게 호도하는 자세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명품 도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디자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실제로 명품 도시라는 표현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데, 넓은 의미에서 좋은 도시 혹은 수준 높은 도시 정도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선진국의 주요 도시들을 명품으로 간주하고 벤치마킹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몇몇 눈에 띄는 디자인을 직수입하는 것이다. 명품 옷을 입고 보석으로 치장하면 사람도 명품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처럼, 튀는 디자인 몇 개면 명품 도시가 될 수 있다는 논리와 비슷한 셈이다.

유럽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옥같은 건물을 갖고 있다. 피렌체 정도면 그야말로 명품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피렌체의 진정한 가치는 르네상스 시대가 추구한 인본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가장 이상적인 도시의 창조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이상적 도시란 인간의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주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유럽 역사에서 명품에 비유할 만한 도시는 여럿 있는데, 대부분의 공통점은 디자인을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닌, 사회가 더 높은 수준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현대 도시계획의 선구자 중 하나인 카밀로 지테는 도시계획이 최고 수준의 ‘예술’임을 강조한 바 있다. 기능과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도시계획이야말로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높은 수준의 창조적 조율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우리가 사는 도시이기에 의미와 중요성은 더할 수밖에 없다. 파편화된 명품 도시론은 창조적 조율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도시 지도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러한 손쉬운 방식으로 도시가 명품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201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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