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도시 평가와 삶의 질

‘몇번째 세계도시’가 아니라, ‘얼마나 살기 좋은 도시인가’를 자랑할 수 있어야 이런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강한 도시에 사는 불행한 시민을 낳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전세계 도시들 사이의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세계도시 논의와 비판을 주도한 도시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은 정보통신 및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뉴욕·런던·도쿄처럼 경제적 힘을 가진 도시에 자본이 집중됨으로써 경쟁력은 더욱 강해지고, 이에 따라서 도시 간의 불균형이 심화될 것임을 지적했다. 한발 더 나아가 지리학자 피터 테일러는 회계·광고·금융·법률 분야의 경쟁력 평가를 토대로 명백한 위계가 드러난 세계도시 명부를 제시한 바 있다.

도시들 사이의 경쟁은 자연스럽게 도시를 비교 및 평가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따라서 현재 다양한 대학·연구소·금융기관·언론사·출판사 등이 도시의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는 추세다. 흥미로운 점은 조사기관과 세부 평가기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계도시 평가에서 뉴욕·런던·도쿄·파리가 ‘빅4’를 확고히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경쟁력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 ‘경제적 능력’과 그에 따른 ‘사회기반시설’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도시 평가가 부강한 도시를 가늠하는 것에 치우쳐 있음을 의미한다.

경쟁력 평가 결과에 관심을 갖고, 세계도시를 지향하는 것을 딱히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바로 세계도시와 삶의 질의 관계이다. 미국의 머서휴먼리소스컨설팅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연구소가 발표하는 삶의 질에 근거한 도시 평가는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가장 최근의 평가를 살펴보면 머서휴먼리소스컨설팅에서는 빈(비엔나)·취리히·제네바·밴쿠버·오클랜드가, 반면에 이코노미스트 연구소의 경우 밴쿠버·멜버른·빈·토론토·캘거리가 최상위에 자리한다.

두 기관의 평가에서 놀라운 사실은 세계도시의 상징인 뉴욕·런던·도쿄가 모두 30위권 밖에 머문다는 것이다. 인구·경제규모·유동성·이민자 등과 같은 변수 때문에 대도시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결과는 세계도시와 삶의 질이 비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두 기관의 조사가 특히 의미를 갖는 이유는 경제 우선주의 틀에서 벗어나 환경·교육·의료·복지 등 오늘날 동서양을 불문하고 핵심으로 여기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유·무형의 평가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각종 도시평가 결과가 발표되면 모두 촉각을 곤두세운다. 평가 결과가 직간접으로 도시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부강한 세계도시 평가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것에 환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삶의 질을 토대로 평가한 결과에서 하위권으로 순위가 발표되면 겸허한 반성은 고사하고 “평가가 주관적이고 근거가 없다”고 비난하며 애써 무시하고 외면하는 자세이다. 어디 이뿐인가. 오늘날 세계가 가장 치열하게 경쟁중인 친환경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평가나 역사성·정체성·매력도 등에 대한 평가의 경우 우리나라 주요 대도시의 순위는 참담하리만큼 뒤처진다.

무한 도시경쟁 시대에 다양한 평가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을 강조한 평가만을 맹신하고, 그에 따라서 도시의 성공을 측정하며, 나아가 그 결과에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이와 동시에 혹은 더 중요한 측면은 삶의 질에 따른 평가이다. ‘몇번째 세계도시’가 아니라, ‘얼마나 살기 좋은 도시인가’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도시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현시점에서 이런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부강한 도시에 사는 불행한 시민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한겨레신문 20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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