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랜드마크 신드롬을 넘어

진정으로 도시를 빛낼 랜드마크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을 위한 ‘스토리’와 ‘과정’에 집중해야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랜드마크를 향한 낭만적 동경이 아니라, 이성적 통찰이다…

구글에 영어로 ‘landmark’를 입력하면 약 9000만개, 한글로 ‘랜드마크’를 입력하면 약 1200만개의 결과가 검색된다. 한 단어에 대한 결과로는 놀라운 수치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건립된 주요 건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랜드마크라는 표현을 사용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야말로 ‘랜드마크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랜드마크란 옛날에 탐험가가 자신이 지나간 길을 쉽게 돌아오려고 남겨 놓은 표식이다. 이 개념이 도시계획가에 의해 특정 도시와 장소를 상징하는 건조물과 공간을 일컫는 말로 진화했다. 도시는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 추억과 흔적이 누적되는 장소이다. 랜드마크는 특정한 장소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공유하도록 만들며, 도시의 정체성과 차별적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사회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적절한 랜드마크가 심리적 측면에서 편안한 마을과 거리를 구성하는데 공헌함을 강조한 바 있다. 한 가지 더 추가하면 랜드마크는 선명한 도시 브랜딩을 통해 도시가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랜드마크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언론을 통해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완공된 무슨 건물이 랜드마크로 급부상해 도시를 확 바꾸어 놓았다”는 식의 선정적 소식이 쏟아진다. 연이어 비슷한 모습의 시각적 자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세울 만한 랜드마크 몇개쯤 갖지 못한 도시는 체면이 서지를 않는다. 어디 이뿐인가. 예외적이지만 스페인의 빌바오나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와 같이 무명이었던 도시가 랜드마크로 인해 단숨에 세계 관광지도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는 사실은 가시적 성과에 목마른 도시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랜드마크를 향한 어설픈 열정은 높이, 규모, 형태, 이름값 그리고 문화시설을 통한 랜드마크 창조라는 가장 낮은 수준의 방식을 반복적으로 채택하는 우를 범하게 한다. 사회학자 레슬리 스클레어는 형식만 다를 뿐 오늘날에도 옛날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힘과 권력을 과시하려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랜드마크를 짓는다고 비판한다. 언론에서 성공한 랜드마크로 칭송하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보자. 빌바오시와 시민 그리고 기업이 도시 재생을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치열하게 논의하고 어떻게 비전을 수립하여 일관되게 실행했는지, 테이트 모던을 위해서 테이트재단이 어떤 전략을 수립했고 런던시는 균형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지원했는지를, 이들을 벤치마킹한다는 도시들이 살핀 적이 있는가. 이면에 담긴 노력을 애써 외면한 채 파격적 모습의 결과물이 도시를 바꾼다는 유치한 수준의 상업적 주장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랜드마크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랜드마크를 복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증된 세계적인 대가로 하여금 비슷한 수준의 건물을 짓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랜드마크 효과’까지 복제되지 않는다.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하고,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과 무관하며, 급조된 빈곤한 상상력을 통한 결과물이 대가의 손을 거친다 한들 한 도시를 상징하고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랜드마크로 탄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21세기 들어서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시행된 프로젝트 중에서 현재 랜드마크로 인정받는 사례는 또한 얼마나 있나.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오늘날, 랜드마크 신드롬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될 것이다. 진정으로 도시를 빛낼 랜드마크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을 위한 ‘스토리’와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랜드마크 신드롬이 한순간의 유행에 머물지 않고 도시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랜드마크 효과를 낳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랜드마크를 향한 낭만적 동경이 아니라, 이성적 통찰이다.

한겨레신문 201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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