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런던의 이미지를 바꾼 10개의 랜드마크 2

<세인트 폴 대성당>은 단순한 종교적 혹은 건축적 의미를 넘어서 명실공히 런던을 상징하는 정신적 아이콘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 런던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인 테이트 모던이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며 남쪽에 건립됨으로써 문화적, 시각적으로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했다.   [문화관광연구원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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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후 

고전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유럽의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런던에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런던은 하나의 일관된 이념이나 정책에 따라 계획된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서 로마는 16세기 말, 교황 식스투스 5세에 의하여 바로크 스타일로 도시 개조가 이루어졌다. 그 핵심은 기존의 건물 및 공간들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교회, 문, 광장, 오벨리스크 등을 연결하는 ‘도시경관축’을 형성하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런던의 오랜 라이벌인 파리의 경우, 19세기 오스만이 파리 대개조를 실시하여 완성되었다. 오스만의 계획 역시 곧게 뻗은 대가로를 만들고, 역, 광장, 공원, 극장 등을 적절히 배치하여 시각적 연계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로마와 파리의 도시계획은 각각 다른 특징을 갖고 있지만, 다양한 랜드마크들을 연결하는 도시경관축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도시를 이해하도록 만들었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당시에 형성된 로마와 파리의 도시 모습은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서 이러한 방식은 빈, 세인트 페터스버그 등을 포함한 유럽의 여러 역사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런던은 다르다. 런던은 조지안, 빅토리안, 에드워디안 시대는 물론이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탄생시켰지만, 로마나 파리와 같이 분명한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도시계획을 시행하지 못했다. 단지 각각의 시기별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런던만의 상황은 단점이면서 동시에 장점으로 작용했다. 로마나 파리와 같이 선명한 이미지를 얻지 못했다는 점은 단점이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다는 점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런던만의 상황 속에서 지난 수백 년간 변하지 않고 런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그리고 지난 2000년에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건립된 테이트 모던은, 그동안 런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강력한 도시경관축이 형성될 가능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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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지키는 불사조, 세인트 폴 대성당

현재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는 루드게이트 언덕에 최초의 성당이 지어진 것은 604년으로, 런던 국교회의 주교인 멜리투스에 의해서다. 물론 당시에는 위치가 갖는 중요성만 고려된 작은 성당이었을 뿐, 현재와 같은 대성당은 아니었다. 이후 성당은 962년, 1087년, 1666년에 일어난 세 차례의 대화재로 무너지고 다시 짓기를 반복했다. 현재의 모습은 1666년의 대화재 이후 크리스토퍼 렌이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복구한 것이다. 이후 이곳에서 정부 및 황실과 연관된 크고 작은 대부분의 행사들을 거행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런던의 물리적•정신적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세인트 폴 대성당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12월 29일, 독일군은 런던 중심가에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하늘을 뒤덮은 전투기들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세인트 폴 대성당이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1666년 대화재 이후 복구된 세인트 폴 대성당은 명실공이 런던, 나아가서 영국의 상징이었다. 독일은 전면전을 선포한 영국의 기선을 제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세인트 폴 대성당 공격을 주목한 것이다.

독일군의 폭격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속되었다. 대성당의 몇 미터 위쪽으로 수십 발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주변이 일순간에 시커먼 연기로 휩싸였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시민들은 고개를 들고 한마디 던졌다. “괜찮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이 무사한지를 묻는 것이었다. 독일군의 계속된 공격에도 불구하고 세인트 폴 대성당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 순간부터 영국인들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런던을 지켜주는 불사조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대성당은 단순한 성당의 의미를 넘어섰다.

건축적 측면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은 독일의 쾰른 대성당,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더불어서 유럽을 대표하는 3대 성당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비판적 관점에서 보면 세인트 폴 대성당의 건축적 가치는 쾰른 및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세인트 폴 대성당은 런던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에 있어서 쾰른 및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능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런던에서 진행된 주요한 도시계획들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런던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로마 및 파리가 주요 랜드마크들을 연결하여 ‘선(線)’적인 도시를 구성했다면, 런던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점(點)’적인 도시를 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람들이 세인트 폴 대성당을 어떻게 인식하고, 감상할 수 있는지가 다음의 세 가지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었다.

첫째, 세인트 폴 대성당의 정면인 서쪽의 경관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위한 행렬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서쪽의 보행로에서 접근하면서 돔을 중심으로 한 대성당의 위용을 최대한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성당으로 향하는 루드게이트 힐 거리는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높이, 형태, 색, 조명 등에 있어서 철저한 규제를 받고 있다.

둘째, 세인트 폴 대성당의 후면인 동쪽과의 연계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동쪽은 런던의 금융 및 보험 중심지인 뱅크 지역으로써, 전쟁 이후 가장 활발하게 개발이 진행된 곳이다. 연재 1회(<너울> 197호)에 소개한 거킨 역시 이곳에 있다. 따라서 이곳에 새롭게 개발되는 건물들은 멀리서 보았을 때 세인트 폴 대성당과 시각적으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는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측면으로, 템스 강에서 보이는 세인트 폴 대성당의 이미지다. 비록 서쪽이 대성당의 정면이지만, 도시를 배경으로 대성당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한 최상의 방향은 남쪽인 템스 강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강 건너의 맞은편(현재 테이트 모던이 있는 곳)을 포함하여 강변에서 접근하면서 대성당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은 런던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작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런던의 문화 랜드마크, 테이트 모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런던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일은 지난 60여 년 동안 런던의 화두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템스 강 건너편, 세인트 폴 대성당과 마주한 위치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는가는 무엇보다 민감한 문제였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런던 시의회는 런던 시민과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려고 템스 강변에 몇 개의 대규모 발전소를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그 중 하나가 테이트 모던의 모태가 된 화력발전소다. 당시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는 교회 및 산업 건물 디자인을 통하여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은 건축가였다. 따라서 그가 섬세하게 디자인한 발전소는 기존의 공장 건물들이 갖고 있던 추한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템스 강변에 우뚝 솟아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를 ‘산업 대성당(Industrial Cathedral)’이라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스코트는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세인트 폴 대성당과 화력발전소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연계될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 특히 화력발전소의 위치, 형태, 재료, 색깔 등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 돔의 높이와 모습을 고려하여 디자인된 99m 높이의 굴뚝이 한가운데 세워졌고, 길이 152m, 폭 24m, 높이 35m의 건물을 위해서 약 4,000만 개의 벽돌이 사용되었으니 대성당과 충분히 비교될 만하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극적인 모습의 테이트 모던이 탄생할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공은, 사실상 스코트가 디자인한 화력발전소에 찾을 수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지난 1994년에 있었던 테이트 모던 현상설계에는 렘 콜하스, 안도 타다오, 렌조 피아노 등을 비롯하여 여러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석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스위스 건축가 헤르족과 드 뮤론이 당선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테이트 재단에서 이들의 안을 선정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헤르족과 드 뮤론의 안이 기존에 스코트가 디자인한 화력발전소의 모습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가 비록 1981년 유가파동으로 인하여 문을 닫긴 했지만, 벽돌로 섬세하게 지은 이 건물은 영국 근대건축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로 여겨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헤르족과 드 뮤론의 디자인은 화력발전소가 지닌 상징성과 잠재력을 재발견하여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건축가들의 작품과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헤르족과 드 뮤론이 탈바꿈시킨 테이트 모던과 과거의 화력발전소를 비교해보면, 지붕 위에 덧붙여져 전시실로 사용되는 ‘유리 박스’를 제외하고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다른 한편으로 테이트 모던의 핵심은 서쪽의 주출입구인 터어빈 홀이다. 대규모 철거작업을 통해서 깔끔하게 비워지고, 경사로가 놓인 터어빈 홀에서는 다른 현대 미술관들에서는 소화하기 힘든 대규모 전시나 행사가 가능하다. 그런데 보통 이곳은 특별한 전시나 행사가 없이 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템스 강변을 따라서 걸어온 사람들은 서쪽 출입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터어빈 홀로 흘러들어온다. 즉, 미술관이면서 동시에 강변로의 연장인 셈이다. 이와 같은 터어빈 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소풍 온 어린이들과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거나, 편안하게 누워서 책을 보는 것이다. 그야말로 실내에 만들어진 공원이나 다름없다. 세계 어느 미술관에 이 정도로 큰 휴식 공간이 있을까. 기존의 화력발전소가 지니고 있던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독특한 공간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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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은 지난 수백 년간 런던이 안고 있던 두 가지 딜레마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테이트 모던은 문화·예술 도시로서 런던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런던에는 국립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대영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들이 많지만 이들을 소위 ‘월드 클래스’로 부르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보편적으로 월드 클래스로 불리는 박물관들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하나는 높은 수준의 소장품이고, 다른 하나는 박물관 자체의 건축적 매력이다. 중요한 사실은 건축적으로 매력적인 박물관들은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에게 그 자체로 높은 수준의 전시품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바로 테이트 모던이 그 역할을 해낸 것이다. 

둘째, 테이트 모던은 세인트 폴 대성당과 연계하여 그동안 런던에 존재하지 않았던 남북을 연결하는 선적인 도시경관축을 만드는 초석을 놓았다. 테이트 모던 내의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과 뒤편의 도시 모습이 예전에는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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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닌 하나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지하철 세인트 폴 역에서 내려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럼, 세인트 폴 대성당을 감상할 수 있는 최상의 위치는 어디일까. 바로 테이트 모던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종교적·사회적·정치적 의미에서 런던의 중심 역할을 해왔고, 테이트 모던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미 런던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두 랜드마크는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당당히 마주 서 있다. 이제 세트 폴 대성당이 없는 테이트 모던이나, 테이트 모던이 없는 세인트 폴 대성당은 상상하기 어렵다.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 21세기 런던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 본 원고의 저작권은 문화관광연구원 및 김정후 도시건축정책연구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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