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포스트카드를 바꾼 세 개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밀레니엄(Millennium)’이라는 용어는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물리적으로는 불과 몇 년의 시차가 있을 뿐이지만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그 어떤 것보다 강한 상징성을 갖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러한 밀레니엄의 상징성과 대의명분을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많은 준비를 했다. 그리고 1995년에 밀레니엄위원회(The Millennium Commission)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위원회에 따르면 초기에 약 3조가량의 기금을 복권을 통하여 조성했고, 이 기금은 런던에 200여 개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는 3,000여 개의 프로젝트에 분산 투자되었다.

7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조심스럽게 주요 밀레니엄 프로젝트들에 대한 평가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국가 이미지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와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글에서는 런던에서 진행된 밀레니엄 돔,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 아이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관광연구원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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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

소외된 자연을 중심에 세우다

런던 아이, 밀레니엄 돔, 밀레니엄 브리지, 이 세 개 프로젝트의 개별적 상징성을 떠나서 우선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점은 프로젝트의 위치다.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 개 프로젝트는 모두 템스 강변에 건립되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밀레니엄 돔의 경우 강 동쪽의 버려지다시피 한 그리니치 반도의 만곡부 강변에, 런던 아이는 런던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 중 하나인 램버스 지구(London Borough of Lambeth)에 건설되었다. 그리고 밀레니엄 브리지는 런던에서 가장 가난하고 슬럼화된 지역인 서더크 지구(London Borough of Southwark)와 연결된다. 즉, 런던 지도의 소외된 지역들이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런던의 밀레니엄 프로젝트들이 철저하게 기존 낙후된 지역 재개발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측면에서 런던은 지난 수백 년간 서쪽과 템스 강 북쪽을 중심으로 번영해왔다. 매우 불균형적인 발전이었음에 틀림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지와 주요 시설들 역시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이와 같은 지역 간, 특히 남북의 불균형은 경제·사회·문화 등의 모든 측면에서 심각한 괴리와 불평등을 초래했다.

20세기 중반부터 영국의 사회학자 및 정치인들은 템스 강 중심의 대통합이 런던의 미래를 위한 열쇠임을 끊임없이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획기적인 방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대역사를 감행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통한 균형적 도시발전이다. 표면적으로는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통하여 새 천년을 기념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적으로는 국민적 동의하에 막대한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런던 재개발 동력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이는 21세기 런던의 발전이 템스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한다는 강력한 정치·사회적 아젠다와도 밀접하게 연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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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프로젝트, 세 개의 꿈

세 개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에서 1999년 12월 31일에 런던 아이가 가장 먼저 개장했다. 건립 목적은 단순 명쾌하다. 런던 시내를 한눈에 감상하기 위함이다. 런던 아이는 높이 135m에 달하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망용 구조물로써 동시에 800여 명을 태울 수 있는 첨단 장비를 갖춘 32개 캡슐로 이루어졌다. 런던 아이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첫째, 런던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런던 아이가 건립되기 전에 일반 대중이 런던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던 장소는 몇몇 고층 건물들과 세인트 폴 대성당의 최상부 돔 정도였다. 그러나 고층 건물들의 경우 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되었고, 세인트 폴 대성당의 경우 성당 상부까지 계단으로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뿐더러 시야도 한쪽으로 치우쳐서 그리 좋은 장소라 할 수 없다. 따라서 런던 아이는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런던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상의 ‘조망지점(Viewing Platform)’을 제공한다. 런던 아이가 파리의 에펠 탑과 비교되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다. 중세 도시 구조를 간직한 유럽 도시들의 경우, 개별 건축물보다 도시 전체를 감상하는 것이 훨씬 큰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실상 이를 위한 적절한 조망 지역이나 장치를 갖춘 경우는 드물다. 더군다나 고층 건물 상층부의 제한된 지점에서 도시를 감상하는 것과 런던 아이와 같은 움직이는 구조물에서 도시를 감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둘째, 런던 아이는 그 자체로 기존 런던의 건축물들과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구조물인 런던 아이는 커다란 규모와 높이로 런던의 다양한 위치에서 드러난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크고 작은 고전 건축물들과 여러 위치에서 중첩됨으로써 독특한 스카이라인과 실루엣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서,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파크에서 보는 런던 아이는 호수와 자연, 호스 가드(Horse Guards) 건물과 중첩되어 전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유사한 맥락에서 런던 아이는 야경에도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 런던의 야경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 타워, 세인트 폴 대성당 등의 고전 건축물들과 템스 강의 다리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여러 위치에서 조망이 가능하며 움직이는 구조물인 런던 아이는 밋밋하고 정적이던 런던의 야경을 동적으로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런던 아이 개장 후 며칠이 지난 2000년 1월에 밀레니엄 돔이 개장했다. 밀레니엄 돔은 세계 시간의 기준이 되는 그리니치 표준시(GMT)를 정하는 천문대와 인접한 그리니치 반도에 위치해 있으므로 상징적 측면에서 밀레니엄을 기념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밀레니엄 돔은 100m 높이의 12개의 타워(열두달 을 상징)로 지지되고 돔의 직경은 365m(365일을 상징)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지붕 구조체다. 밀레니엄 돔은 2만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시 및 공연장으로 계획되었고, 짐작할 수 있듯이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 가장 많은 비용이 투자되었다. 

밀레니엄 돔은 현재 런던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동진정책(Easteward)’의 상징적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인 템스 강 동쪽 개발이 런던 미래의 핵심이고, 밀레니엄 돔은 그 상징적 존재인 셈이다. 따라서 여타 밀레니엄 프로젝트에 비하여 훨씬 복잡한 정치적 이슈들과 연계되어 있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밀레니엄 돔은 초기 계획 단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 진행된 전시들은 평균 이상의, 지속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초기 예상은 빗나갔으며,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단순한 건물 유지비용만도 한 달에 수억 원에 달했기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괴물로까지 비유되었다. 이후 재사용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모바일폰 회사인 The O2에서 돔을 인수하여 스포츠 및 문화시설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라스베가스식 대형 카지노 시설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이 전격적으로 수립, 발표되었다. 강한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고육지책으로 수립된 카지노 시설로의 전환은, 런던 시의 강력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에 발표된 결과에서 경쟁도시인 맨체스터에 패하여 모든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밀레니엄 브리지는 세 개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늦은 2000년 6월에 개장했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 구조전문가 그룹 아럽, 조각가 안토니 카로의 합작품인 밀레니엄 브리지는 템스 강을 건너기 위한 순수한 보행자용 다리로 디자인되었다. Y자 형태 교각의 양쪽 끝에 각각 4개의 서스펜션 케이블을 걸어서 폭 4m, 전체 325m에 이르는 알루미늄 보행 데크를 지탱하는 최첨단의 구조기술이 적용되었다. 밀레니엄 브리지의 역할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물리적·상징적 측면에서 런던 통합의 발판을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수 차례에 걸친 화재와 폭격 등을 거치면서 명실 공히 런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세인트 폴 대성당과 문화도시 런던의 상징으로 부상한 테이트모던 갤러리를 정점으로 강북의 센트럴 런던과 강남의 서더크 지구를 연결한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유발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극단적 불균형에 놓여 있던 템스 강의 남북지역을 연결한다는 것은 런던이 반드시 풀어야 했던 과제로, 밀레니엄 브리지가 그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물론 서더크 지역의 경우 테이트모던 갤러리가 더 직접적으로 재개발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밀레니엄 브리지 없는 테이트모던 갤러리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밀레니엄 브리지의 역할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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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밀레니엄 브리지는 런던에서 가장 강력한 두 랜드마크인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물론이고, 나아가서 템스 강을 감상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서 밀레니엄 브리지가 건립되기 전에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몇몇 제한된 위치에서만 감상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양방향으로 다리를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현재 ‘세인트 폴 대성당─밀레니엄 브리지─테이트모던’으로 이어지는 길이 런던 최고의 관광 루트로 여겨지는 것을 보면 밀레니엄 브리지의 역할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제로 밀레니엄 브리지를 위한 현상공모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시되었던 조건 이 두 랜드마크를 향한 조망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밀레니엄 브리지를 통하여 런던의 상징인 세인트 폴 대성당을 감상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와 21세기 런던의 도시 아젠다 

앞선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현 시점에서 런던 아이와 밀레니엄 브리지가 밀레니엄 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필자만의 시각은 아니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목적과 스타일을 가진 세 개의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두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첫 번째 기준은 초기 목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밀레니엄 브리지와 런던 아이가 취한 방식은 성공적이다. 아울러 밀레니엄 돔에 대한 비판의 핵심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건립 단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밀레니엄 돔의 목적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즉, 수많은 정치적 아젠다는 있을지언정 런던 아이나 밀레니엄 브리지와 같은 정확한 목표가 없다. 런던 역사를 기록하는 학자인 데보라 젠킨스(Deborah Jenkins)는 런던 아이의 성공을 방문객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방문객들은 런던 아이를 통하여 그들이 런던을 어떻게 경험하고 감상했는지를 쉽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즉, 초기 의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문객들의 반응은 밀레니엄 브리지에서도 동일하게 파악된다. 

그러나 밀레니엄 돔은 다르다. 도시계획 컨설턴트인 톰 머찬트(Tom Merchant)는 다음과 같은 직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밀레니엄 돔은 무엇인가? 돔에서의 경험을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분명한 하나의 목적과 실행 주체가 있는가? 밀레니엄 돔 방문객들은 그들의 경험은 물론 런던에 있는 다른 전시장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밀레니엄 돔만의 독특한 역할과 감동을 방문객들에게 전달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 평가 기준은 공공성이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도시 성패를 좌우할 정도의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건축적 이벤트’다. 거주자들과 외국인들의 방문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그들에게 최상의 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당위성을 내포한다. 방문객 숫자만으로 평가한다면 세 개 프로젝트는 모두 성공이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지속성이 있고, 나아가 양질의 공간을 바탕으로 공공에 기여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가면 평가는 달라진다. 즉, 밀레니엄 브리지와 런던 아이가 끊임없이 사람들을 끌어들여 주변 일대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반면에 밀레니엄 돔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특히, 런던 아이는 템스 강의 사우스 뱅크 지역, 밀레니엄 브리지는 다리 양쪽 수변공간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방문객으로 인한 관광 수입 이상의 보이지 않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런던에 세운 세 개의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영국이 선도적 위치에 있는 하이테크 건축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통하여 기존에 런던이 지니고 있던 도시 이미지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세 개의 프로젝트가 거둔 성과를 건축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새로운 천 년을 기념하는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목적은 건축적 성취가 아닌 사회적 성취에 있다. 따라서 런던의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세기의 건축은 단순한 건축적 성취가 아닌 사회적 성취를 지향해야 한다. 런던 아이와 밀레니엄 브리지 두 개의 프로젝트가 지난 7년간 바꿔놓은 런던의 변화는 건축이 어떻게 도시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아가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충분히 입증했다. 밀레니엄 돔 역시 건축적으로만 평가한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엄 돔을 런던 아이와 밀레니엄 브리지만큼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는 가장 많은 비용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대치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본 원고의 저작권은 문화관광연구원 및 김정후 도시건축정책연구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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