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특집] 런던 빈민가에서 찾은 젠트리피케이션, 해법은

[스페셜리포트 Ⅰ] 젠트리피케이션 해법을 찾아서 – ③영국 런던
– 지역공동체에 토지·건물 우선권 ‘해크니’ 문화예술 중심지로 변모
– 건물 장기 임대해 소기업·예술가들에게 제공…지역 활성화·삶의 만족도 높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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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런던의 중심가다. 사진은 템스강에서 보이는 런던을 대표하는 상징물 빅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전 세계를 통틀어 영국 런던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가 쓴 ‘런던 : 변화의 양상(Aspects of change, 1964년)’에 등장한다. 최근 한국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조금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런던대 도서관을 찾아가 보았다. 책은 아주 오래돼 빛바랜 채 도서관 구석 자리에 꽂혀 있었다. 마지막 대출일은 1998년이라고 찍혀 있었다. 루스 글라스는 이 책에서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해 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이 용어는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원래는 낙후된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활성화되는 긍정적인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주거비용이 상승해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영국은 산업화가 시작된 곳이니 어쩌면 그곳에서 가장 먼저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고 개념을 정의한 것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영국은 17~18세기에 도시화 과정을 겪었고 한국은 6·25전쟁 이후 1960년대부터 도시화가 시작됐다. 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비슷해 보이지만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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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런던 최대의 쇼핑 거리 옥스포드서커스 지역이다. 이곳은 전세계 명품숍이 다 모여있다. 땅값과 임대료가 가장 비싼 동네이기도 하다.

 

영국이 긴 역사 속에서 찾아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방안을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발생한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벤치마킹해야 할까. 7월 말 영국 런던 현지를 찾아가 해결책을 알아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국 편 젠트리피케이션 해법의 핵심은 문화·예술을 통한 시민 주도형이었다. 물론 시 차원의 재정도 투입됐다. 런던 시민들은 낙후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예술로 다문화를 융합했다. 중산층이 이주하며 땅값과 임대료가 오르는 현상에 맞서 커뮤니티(협동조합)를 설립해 지역의 땅과 건물을 사들였고 이를 다시 가난한 지역민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해 주며 스스로를 지켜냈다.

지난 7월 26일부터 1주일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그에 대한 해법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영국 런던을 찾았다. 그곳에서 도시재생 전문가이자 도시건축정책연구소(JHK Urban Research Lab)를 운영 중인 김정후 박사(런던대 UCL 인문지리학과 펠로우·한양대 도시대학원 특임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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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런던 동부(이스트엔드) 화이트채플 지역에 위치한 공공 미술관 화이트채플 갤러리다.

 

◆ 이스트엔드, 문화·예술로 슬럼가 꼬리표 떼

런던 지하철 화이트채플역에서 만난 김 교수는 런던에서 가장 먼저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던 지역을 소개해 줬다. 바로 화이트채플 일대다. 화이트채플은 지도상으로 런던의 동쪽, 템스강 북쪽에 자리한다. 산업화 시절부터 런던의 서쪽은 부촌, 동쪽은 빈민촌으로 구분돼 왔다. 동쪽 지역에는 방글라데시·터키·파키스탄 등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해 살고 있기도 하다. 화이트채플 근처에는 브릭레인·혹스턴·리버풀스트리트 등이 인접해 있다. 가수 지드래곤(GD)이 뮤직비디오 ‘삐딱하게’를 촬영했던 쇼디치거리도 여기에 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런던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뱅크’ 지역(시티)의 높은 빌딩들이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거리다. 화이트채플은 극심한 빈부 격차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악의 빈민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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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이트채플 지역을 표시한 지도다. 이곳은 런던의 동쪽, 템스강의 북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1888년 벌어진 영국의 미제 사건 ‘잭 더 리퍼’로도 유명했다. 장기가 적출된 매춘부의 시체 5구가 발견되는 등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 동네다. 그야말로 매춘과 마약, 범죄의 산실이었다.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뒷골목에서 강력 범죄가 사라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김 교수는 “2011년 지드래곤 뮤직비디오로 처음 한국에 소개됐을 때만 해도 길거리에 마약쟁이와 술주정뱅이들이 너무나 많이 점거하고 있어 촬영이 힘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여전히 이곳은 런던 전체로 보면 해외 이민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범죄율이 가장 높은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지역민이 노력한 결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한 곳으로 손꼽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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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문화 예술을 통해 다문화를 융합한 사례로도 꼽힌다.

 

이 지역을 밝게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화이트채플 갤러리였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정부의 지원으로 지어졌다. 런던시는 지역적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1901년 이곳에 공공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긍정적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갤러리는 이민자나 범죄자 등 문화와 계급적으로 빈곤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과 교육 및 워크숍을 진행했다. 지역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 전시하는 등 지역 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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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아키비스트(기록 보관 담당자)로 근무 중인 도르 던컨 씨.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아키비스트(기록 보관 담당자)로 근무 중인 도르 던컨 씨는 “런던의 서쪽 지역 웨스트엔드에서 부를 가진 상류층들이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동안 동쪽의 이스트엔드는 해외 이민자들이 정착해 계급사회에서 소외된 채 지상의 지옥 생활을 하며 방치돼 있었다”면서 “화이트채플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각종 불균형이 조금씩 좁혀졌다”고 전했다. 런던시는 2009년 4월 1350만 파운드(약 230억원)를 들여 갤러리 증축 공사를 시행하며 다문화 융합과 교육 사업을 더욱 활성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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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지역의 젊은 화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무료 전시회를 열어주는 등 지원사업을 펼쳐 왔다.

 

특히 젊은 작가 육성 사업은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자랑거리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가 대가로 성공하기 전 이미 이곳에서 전시를 진행했고 데이비드 호크니, 길버트 조지, 리처드 롱 등 영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곳 출신이라는 점도 큰 의미를 지닌다.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이스트엔드가 우범지대라는 꼬리표를 떼고 예술가들의 핫 플레이스로 유명세를 타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던컨 씨는 “갤러리의 시작은 초라했지만 지금은 영국의 대표 비영리 공립 미술관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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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년전 화이트채플 지역에 처음으로 문을 연 지역 커뮤니티센터(문화센터)다. 

 

◆ 빈 공장에 예술가 모여들며 ‘쇼디치 열풍’

화이트채플 갤러리를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런던 길드홀대와 북런던대가 합병하며 2002년 개교한 런던메트로폴리탄대가 보인다. 우범지대였던 이 지역은 대학이 들어서며 젊은이들의 활기가 넘치는 대학가로 변모했다. 이 대학은 한국 유학생이 많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화이트채플이 대학가로 변모한 점도 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오며 지역을 활성화한 젠트리피케이션의 긍정적 현상으로 꼽힌다.  대학 바로 옆에는 지역 커뮤니티센터(문화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5년 전 문을 열고 주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은 런던 대부분 지역의 커뮤니티센터가 환경·음식·웰빙·주거권 등을 보호하는데 주력한다면 이곳은 빚 관련 상담, 법적 분쟁 해결 등을 도맡는다. 그만큼 범죄가 많은 동네였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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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과거 맥주 양조장으로 유명했던 ‘트루먼 양조장’ 일대다.

 

북쪽으로 조금 더 걸으니 런던을 대표하는 맥주 양조장이었던 ‘트루먼 양조장’의 옛터가 보인다. 동네 전체가 양조장 건물들로 가득 차 있다. 한때 1만5000여 명이 일하던 대규모 공장지대였는데 1980년대에 문을 닫고 방치됐다. 이 지역에 공공 갤러리가 생기고 대학이 들어서면서 2000년대 초부터 빈 공장 곳곳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작품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현재 트루먼 양조장 근처 골목 브릭레인에는 70~80여 개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건물 1층은 무명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으로 운영하고 2~3층은 주거지로 사용 중이다. 거리에는 대기업 브랜드나 명품 숍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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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역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점포다. 매장 앞에는 거대 상권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 매장 출입문에 “우리는 작은 규모의 독립 점포이며 거대 상권으로 변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쓰인 문구가 보였다. 이곳은 한국의 홍대처럼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빈티지 패션과 힙스터가 유명세를 타며 인기를 끌고 있다.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덩달아 땅값과 임대료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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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동산 중개 회사 살릭앤드코(Salik&co)의 컨설턴트 아시프 솔로몬 씨다.

이 지역에서 30년간 거주하며 부동산 중개 회사 살릭앤드코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아시프 솔로몬 씨는 “임대료는 10년 전에 비해 47%, 20년 전과 비교하면 348% 올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5년 전만 해도 7만~8만 파운드(1억원 정도)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100만 파운드(15억원 정도)가 있어야 구매할 수 있다. 이어 “이곳은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마약과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쇼디치 열풍’이 불었고 그들이 지역 발전을 견인했는데 임대료가 오르면서 쫓겨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생기며 다문화 교류 및 융합과 지역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지만 반면 주거비와 임대료 상승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쫓겨나는 부정적인 효과도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시 차원에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다. 런던시는 이 지역 건물을 일부 구매해 소외 계층과 예술가들에게 저렴한 값에 임대한다. 공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라 허름하긴 하지만 작품 활동을 하기엔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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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런던의 북동쪽은 대표적 빈민가로 런던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먼저 발생한 지역이다.

 

◆ 자체적으로 협동조합 구성해 지역민 보호

런던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현상을 극복한 또 다른 사례도 만나봤다. 런던의 33개구 중 하나인 해크니 지역의 이야기다. 해크니는 화이트채플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온다. 이곳은 해외 이주민들의 집중 거주지로 외국인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각종 지표에 따르면 과거 빈곤율과 범죄율이 가장 높고 교육열과 커뮤니티 활동이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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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해크니 지역은 런던 내에서 가난한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해크니 지역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에 놓인 결정적인 이유는 런던의 중심부와 인접한다는 지리적 장점과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1960~1970년대 도시 외곽에서 거주하던 중산층은 해크니의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며 이 지역에 유입됐다. 중산층들은 주로 조지언 주택, 빅토리언 주택, 에드워디언 주택(영국의 각 시대별 주택 스타일) 등 전통적인 주택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핵심이 된 주요 대상들이다. 구매한 주택은 약간의 수리를 거쳐 고급 주거지로 탈바꿈됐다. 중산층들은 직접 거주하거나 다시 임대했다. 이 때문에 예전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임대료가 인상됐고 기존 저소득층 거주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해크니개발협동조합(HCD)이다.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HCD는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 지역 내 공공과 민간 소유의 토지 및 건물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혹은 무상으로 장기 임대해 지역 예술인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Affodable workspace)’으로 내줬다. 이들은 개별 세입자들의 사업을 지원하고 컨설팅해 주는 등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주도했다. 또 다양한 임대 사업을 통한 이윤을 다시 지역 발전에 환원하고 새로운 건물을 적극적으로 매입 및 임대함으로써 지역 부동산 시장의 주도권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젠트리피케이션을 관리하는 역할까지 담당했다. 이는 2011년에 제정된 지역주권법(Localism Act)을 통해 협동조합이나 지역공동체가 토지 허가 및 사용 등에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정부에서 법적으로 이들 협동조합을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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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런던이 찾은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법은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지역민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시민주도형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거리의 예술가들 작품이다.

 

“해크니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다문화에 기초한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참여와 공유를 유도하며 시민 주도형 해결 방식을 택했습니다. 1982년 HCD가 달스턴 지역에 방치된 건물을 구청으로부터 임대받아 출범한 것은 이 기관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김 교수).”

해크니는 지난 30여 년간 큰 변화를 맞았다.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에서 런던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지역이자 창조 사업의 중심지로 변모한 것이다. 조합을 중심으로 한 지역 활성화는 주민들 간의 유대 관계를 강화했고 그 덕분에 경제·사회·환경 등 모든 지표에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해크니 지역 주민들은 직업의 기회는 물론이고 과거에 비해 사회적·문화적 혜택도 크게 늘었다.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정부 지원을 통한 지역 발전이 아니라 커뮤니티 차원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지역의 자생력을 갖춘 사례도 있다.

공동체기업연합인 로컬리티(Locality)는 커뮤니티 스스로가 지역 개발의 주체가 된다. 로컬리티는 지역이 보유한 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이윤을 창출한다. 사용성이 떨어지는 공공이나 민간의 부지·건물을 지역 발전을 위해 개발하는 방식이다. 런던 내에 로컬리티 회원 단체는 이미 800여 개에 이른다. 이 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런던의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는 기획에서 시행·관리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지역 주민의 의견이 반영된 발전 모델을 시행함으로써 커뮤니티 주도형 도시재생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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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도시재생 전문가 김정후 박사다. 런던시의 도시재생 사례를 들며 한국 상황에 벤치마킹해야 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 <인터뷰> 


김정후 박사(런던대 UCL 인문지리학과 펠로우·한양대 도시대학원 특임교수)
– 선도 악도 아닌 젠트리피케이션, 도시재생 측면으로 접근해야

Q : 도시재생이란 무엇인가.

A : “도시는 새로운 산업구조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쇠퇴하고 활성화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도시재생은 현대 도시가 직면한 쇠퇴를 해결하기 위해 20세기에 유럽의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등장한 도시계획적 방법론이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전면적인 변화를 모색하기보다 기존 도시가 보유한 유·무형의 정체성과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를 재활성화의 원동력으로 활용한다. 한국은 6·25전쟁 이후 압축 성장기를 거치면서 전면 재개발이 대세였기 때문에 도시재생이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지 못했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며 도시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원도심이 쇠퇴하면서 관심이 급격히 증가했다.”

Q : 도시재생 전문가로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견해는.

A :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 과정에서 직면하는 여러 현상 중 하나로 양면성이 있다. 결코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영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소셜 믹스(사회·문화의 융합) 개념으로 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과거 런던에서 심각했던 도시 계층화 문제를 해결할 열쇠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혹은 이민자들과 중산층이 섞여 살게 되며 공공 환경이 좋아졌고 문화적 교류를 통해 범죄율이 낮아지는 등 긍정적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따른 땅값·임대료 상승 등 부정적인 현상은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막아냈다.

도시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해야 한다. 영세 상인들이 거대 자본에 밀려 쫓겨나는 일은 최근에 발생한 일이 아니라 1970년대에도 있었던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흐름을 억지로 막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도시재생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다. 영국이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해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이유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가운데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Q : 영국의 사례를 한국에서 적용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A : “도시재생은 민주주의와 비례한다. 정부·기업·지역 거주민 커뮤니티, 전문가 등 당사자들의 이해가 필요하기에 민주주의적 논의 구조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풀기 힘든 문제다. 영국의 해법을 한국에서 시행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치밀한 법과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놓을 필요도 있다.

도시의 쇠퇴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중심이 돼 주도해야 하고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민간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민간이 도시재생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거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도시재생 사업 과정에서 공공이나 민간이 소유한 자산을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는 의미는 자산을 제공한 주체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수준의 혜택이나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방적인 기부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방식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공존의 가치를 확립해야 하고 민간과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

s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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