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넘어 도시를 빛내는 ‘헌책’

점심 식사 후에 산책을 하며 늘 서점에 들립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북 체인 중의 하나인 워터스톤즈(Waterstones)입니다. 책을 좋아해서도 그렇지만 매일 들려야 특별한 할인 행사 등으로 좋은 책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독 저의 눈을 사로잡는 코너가 하나 있습니다. 제 전공인 도시학도, 건축학도, 사회학도, 지리학도 아닙니다. 다름아닌 아래 사진의 특별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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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자리에 멋지게 전시해 놓은 이 책들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모두 ‘헌책’입니다. 주제는 정기적으로 바뀌는데 현재는 공상과학소설(Science Fiction)입니다. 몇 권의 책을 들어서 발간 연도를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1964년, 1966년, 1967년…대부분 40년 이상 지난 책들입니다! 당연히 세월의 흔적을 이기지 못하고, 누렇게 빛이 바랬고, 찢어지고, 경우에 따라 안쪽에 낙서도 조금씩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오래된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새 책을 파는 대형서점에 당당하게 자리한 수십 년 전에 발간된 헌책은 신기함을 넘어 감동까지 자아내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래쪽에는 “These books are foe sal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서점을 찾은 손님들이 오래된 책을 단순히 박물관처럼 전시해놓은 것이 아닌가 하고 망설일 것 같아서입니다.

새 건물 사이에 당당히 자리잡은 옛 건물이 우리 도시를 더욱 빛내곤 합니다. 옛 것을 존중하는 도시와 시민의 ‘의식’과 ‘관록’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서점에서 돈을 벌기 위해 헌책을 수집해 이처럼 판매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수집하고, 청소하고, 관리하는 비용이 훨씬 더 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형서점에 당당히 자리한 헌책들은 서점을 넘어 도시를 빛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옛 것을 존중하는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된 헌책 한 권, 한 권이 저의 눈에는 수백 년 된 고전 건축물처럼 다가옵니다!

ⓒ 20130531  김정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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