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런던의 이미지를 바꾼 10개의 랜드마크 4

런던은 유럽의 경쟁 도시인 파리, 로마, 베를린, 바르셀로나와 비교하여 더 아름다운 도시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은 지속적으로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끌면서 유럽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런던은 ‘경제’와 ‘문화’라는 현대 도시의 번영을 평가하는 두 가지 핵심 기준에 있어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런던 동쪽의 ‘카나리 워프’와 남쪽의 ‘사우스 뱅크’가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관광연구원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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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런던

런던은 유럽의 경쟁 도시인 파리, 로마, 베를린, 바르셀로나와 비교하여 더 아름다운 도시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은 지속적으로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끌면서 유럽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런던은 ‘경제’와 ‘문화’라는 현대 도시의 번영을 평가하는 두 가지 핵심 기준에 있어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런던이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 새로운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실행하는 데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도시들이 기존에 간직하고 있는 전통적 이미지를 보존하는 데 치중하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 10년 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여 가장 많은 변화가 생긴 도시를 꼽는다면 당연히 런던이다. 

런던 시장인 켄 리빙스톤과 런던의 책임자들은 런던이 정체되어 있는 도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런던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서 소개한 6개의 랜드마크는 단일 건축물과 공간 디자인을 통하여 이미지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는 별개로 더욱 거시적인 관점─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런던시가 집중하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 런던 동쪽의 ‘카나리 워프’와 남쪽의 ‘사우스 뱅크’다. 카나리 워프는 20세기 런던이 성취한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으로서의 위상을 21세기에도 지속하기 위해서고, 사우스 뱅크는 런던의 새로운 문화예술 지역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갖지만 템스 강을 매개로 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대규모 개발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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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의 상징, 카나리 워프

오랫동안 런던은 두 개의 상징적인 중심을 가졌다. 국회의사당과 버킹엄 궁전을 중심으로 한 국가 권위와 정치의 중심인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City of Westminster) 지역과 세계 금융 및 보험 회사의 본사들이 밀집한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지역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템스 강 동쪽에 자리한 도크랜드(Docklands)의 카나리 워프(Canary Wharf)가 개발되면서 이곳이 런던의 새로운 경제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21세기 런던은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 세 개의 중심을 가진다. 

카나리 워프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자. 1919년부터 센트럴 런던의 뱅크(Bank) 지역을 중심으로 런던 시내에는 전 세계 주요 금융 및 보험 산업의 본사들이 속속 들어섰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늘어나는 인원을 수용할 업무공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런던 시내에 새로운 건물의 건립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대두되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런던의 도시 구조를 파괴한다고 비난하는 보존론자들의 저항에 맞닥뜨렸고, 현실적으로 센트럴 런던 내에서는 적절한 땅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타협점으로 결정된 장소가 카나리 워프다.

카나리워프가 위치한 도크랜드 지역은 한때 유럽에서 손꼽힐 정도로 활발했던 물류산업 중심지였지만, 1980년에 문을 닫은 이후로 특별한 목적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그러므로 기존 런던의 도시 콘텍스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공간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최적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지역을 중심으로 템스 강 동쪽의 개발이 런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핵심이라는 주장도 충분한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므로 전문가 및 시민들의 동의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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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 워프는 여러 개의 건물군으로 구성되지만, 세 개의 고층 건물로 대변된다. 카나리 워프 타워(One Canada Square), 홍콩상하이은행 타워(HSBC Tower), 시티그룹 센터(Citygroup Centre)다. 각각 높이가 235m, 200m, 200m로 현재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물 1, 2, 3위를 차지한다. 전체적인 건물의 형태는 기능주의에 기초한 간결한 박스형 고층건물로 디자인되었다. 디자인만 본다면 기존 런던의 다른 지역에는 지을 수 없는 높이와 형태임에 틀림없다. 

카나리 워프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당연히 경제적 측면의 가시적 성과에 기인한다. 기존의 센트럴 런던에서 감당할 수 없었던 대규모 사무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런던의 금융 거래 규모, 새로운 일자리 개수 등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한때 뉴욕에 크게 뒤떨어지기도 했지만, 현재는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우위에 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카나리 워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카나리 워프는 금융도시 런던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연재 1회(<너울> 197호)에서 다룬 거킨이 위치한 센트럴 런던의 뱅크 지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런던의 금융 및 보험 산업의 이미지를 대변했다. 카나리 워프는 뱅크 지역보다 강한 이미지를 통하여 21세기 런던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세 개의 건물은 런던 시내의 여러 위치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템스 강변에서는 어느 위치에서든 간에 볼 수 있는데, 동쪽의 랜드 스케이프를 압도하며 우뚝 서 있다. 

여기서 동시에 생각해볼 점은 이러한 카나리 워프의 이미지가 동시에 부정적 평가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카나리 워프 타워, 홍콩상하이은행 타워, 시티그룹 센터는 물론이고 카나리 워프에 지어진 여타 건물들은 기존 런던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뉴욕이나 시카고와 같은 미국의 대도시를 연상시킨다. 즉, 런던이 지닌 고유한 이미지와 스카이라인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세계 문화유산인 그리니치를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론자들의 주장이 매우 타당성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비판은 이미지의 문제만이 아니다. 카나리 워프 내의 건물과 공간들은 소위 영국의 전통적 주거 및 도시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카나리 워프를 주거를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단지 업무를 위한 장소로만 여긴다. 켄 리빙스톤을 비롯하여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은 카나리 워프가 낳은 각종 데이터와 수치를 내보이며 성공을 역설하고, 나아가서 더욱 적극적인 개발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반면에 사회학자들은 “시민들이 카나리 워프를 진정으로 살 만한 곳으로 인식하지 않는 한 어떤 식의 숫자놀음도 의미가 없다”고 일갈한다. 

런던 시에 따르면 카나리 워프의 사무용 공간은 현재의 2배가량 확장될 계획이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고, 이를 위하여 현재와 같은 개발이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경제적 측면에서 카나리 워프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카나리 워프는 상당수의 런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으며, 진정으로 성공한 신도시로 평가하는 것 역시 아직은 시기상조다. 런던 시가 어떤 처방을 통하여 카나리 워프를 명실 공히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신도시로 탈바꿈시킬 것인지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템스 강변의 문화예술 거리, 사우스 뱅크

 연재 1회와 2회에서 각각 설명한 런던 시청과 테이트 모던은 모두 템스 강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런던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여겨졌던 장소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 지역의 개발이 런던의 미래를 위하여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템스 강 남쪽의 지리적 요충지인 사우스 뱅크의 활성화는 큰 의미를 갖는다. 


우선 사우스 뱅크의 지리적 범위를 정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우스 뱅크는 템스 강 남쪽 제방을 형성하고 있는 강변 일대를 일컫는다. 따라서 동쪽으로는 디자인 뮤지엄에서 시작해서 타워 브리지, 런던 시청, 테이트 모던을 지나 서쪽의 웨스트민스터 다리에 이르는 상당히 넓은 영역을 포함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공공공간으로 런던 시가 집중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사우스 뱅크는 이 중에서도 사우스 뱅크 센터로 워털루 역을 포함한 워털루 브리지 주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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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1951년에 영국 페스티벌(Festival of Britain)이 개최된 바 있다. 이 페스티벌을 통하여 런던 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런던의 디자인 경쟁력을 고취시키려 했다. 페스티벌을 위하여 로열 페스티벌 홀, 퀸 엘리자베스 홀 등 일련의 공연장들이 강변을 따라 건립되었고, 이후 헤이워드 갤러리와 국립극장을 포함하여 문화, 예술 관련 시설들과 상업 시설들이 건립되었다. 이로써 사우스 뱅크는 한때 명실상부한 런던의 문화, 예술을 대표하는 장소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을 지나면서 이 지역은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했고, 점차 낙후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우스 뱅크가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두 자치단체인 서더크와 람버스 지구의 관할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사우스 뱅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센트럴 런던의 주요 장소들이 도보권에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갖는다. 이러한 사우스 뱅크를 런던의 문화, 예술 중심지로 환원시키기 위한 계획은 20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다. 건축가 릭 마서가 마스터플랜을 수립했고, 방치되었던 개별 건물들은 신축보다 기존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리노베이션을 통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지난 2000년에 런던 아이가 강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했고(<너울>192호에서 필자가 자세하게 설명했음), 맞은편의 주빌리 정원은 템스 강 일대에서 가장 넓은 잔디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로열 페스티벌 홀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다 다양한 문화예술 시설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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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을 통한 사우스 뱅크의 부활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런던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예술의 거리를 탄생시켰다. 사우스 뱅크의 문화예술 시설들에서 1년 내내 지역 주민들을 위한 행사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행사들이 개최된다. 사우스 뱅크는 전문가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을 위한 음악, 미술, 조각, 공연, 전시, 영화 등 많은 장르를 소화함으로써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독특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둘째, 템스 강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제공한다. 사우스 뱅크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활성화되기 전에는 동쪽 끝 디자인 뮤지엄 주변만이 템스 강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장소였다. 사우스 뱅크에 조성된 강변 산책로와 적절한 휴식 공간은 이미 템스 강 최고의 공공공간으로 여겨진다. 이로 인하여 최근에는 런던에 흩어져 있던 거리의 악사들, 마술사 그리고 휴먼 스테추(사람이 분장을 하고 조각처럼 서 있는 것) 등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이들이 더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사우스 뱅크는 어린 아이에서 노인, 그리고 관광객에서 주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셋째, 낙후되었던 서더크와 람버스 지구의 도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사우스 뱅크는 앞서 설명한 템스 강 위쪽의 런던 시청, 테이트 모던과는 성격이 다르다. 큰 차이는 사우스 뱅크는 문화예술 시설과 더불어서 상업시설들이 이미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런던 시청과 테이트 모던이 주변의 이미지를 개선함으로써 새로운 투자를 유치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면, 사우스 뱅크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오랫동안 머물도록 함으로써 주변의 상권을 활성화시켰고 직접적으로 지역 경제에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템스 강 남쪽 전체의 거대한 문화벨트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템스 강 동쪽의 디자인 뮤지엄 근처에서 시작하여 사우스 뱅크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다리까지는 걸어서 1시간 남짓 걸린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하나의 연결된 산책로나 문화벨트로 여기지 않았다. 사우스 뱅크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 본 원고의 저작권은 문화관광연구원 및 김정후 도시건축정책연구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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