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리뷰] “가치의 재탄생, 도시재생”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버려진 시설이나 노후화한 건물들이 공원이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례가 자주 나오고 있다.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현대미술관으로 만든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을 본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이 자랑하는 이 세계적인 명소는 수명을 다한 발전소가 도시재생을 통해 재탄생한 결과물이다.

프랑스에도 서울역 고가공원의 ‘조상’이 있다. ‘프롬나드 플랑떼’는 ‘서울로7017’ 프로젝트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프랑스 니스의 보행 공원이다. 서울역 고가를 꽃과 나무, 쉼터와 전시 공간이 있는 보행로로 바꾼 것은 파리 12구의 옛 고가철길을 약 5㎞의 산책길로 조성한 것과 흡사하다. ‘프롬나드 빠이용’은 같은 시기 해변도시 니스의 빠이용 강 주변에 조성된 공원으로 1993년 빠이용 강 상부 도로복개구간에 설치된 소규모 공연장과 시외버스 터미널 등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변신시킨 사례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되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개항의 길’이라는 이름의 산책로는 70년 된 일본 요코하마의 철로를 사쿠라기초 역에서 야마시타 공원까지 약 3.2㎞의 산책로로 바꾼 것이다. 길을 따라 해안의 절경이 펼쳐지고 1911년에 건축된 창고는 쇼핑몰이 돼 사람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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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보다 먼저 도시화가 진행돼 도시재생 사업도 앞서 실험한 선진국들을 역할모델로 삼아 도시재생의 개념과 추진 방향, 공공과 민간부문의 역할 등을 알아보고 우리 실정에 맞는 사업을 구상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가까운 일본이 우리의 상황과 가장 비슷하다. 2001년 고이즈미 내각 출범 이후 긴급 경제대책의 하나로 도시재생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 뉴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도시재생이 국가 차원의 경제대책의 일부가 된 것이 꼭 닮았다. 당시 일본에서 마루노우치 개발, 도쿄 미드타운 개발 등 다양한 대형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일본은 지나친 정부 보조금 중심의 지역재생 사업을 벌이다 실패했다. 롯폰기힐스 개발을 주도한 모리빌딩도시기획의 박희윤 한국지사장은 <이코노믹리뷰>에 “일본의 공공주도 도시재생 앵커사업이 대부분 실패했고, 특히 앵커사업의 상업부문은 일부를 제외하곤 전멸했다”면서 “민간과 과감하게 협업의 구조를 만들어야 일본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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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의 재생사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일본은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를 남겼다. 일본의 도시재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 개발업자들이 적극 도시재생에 참여하고 개발 후 지역활성화에 힘썼기 때문이었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도시재생에는 민간 개발업자들의 참여가 대단히 저조하다. 낙후지역의 중소규모 근린재생이 중심이다. 도시재생특별법도 민간 기업의 참여에 대해 특별한 지원이나 규제 완화를 하지 않는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뛰어드는 민간 개발업체는 자연히 적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일본과 우리의 도시 생태가 달라 일본 방식을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 박희윤 모리빌딩도시기획 한국지사장도 “한국의 도시 쇠퇴현상은 조금 특수하다”고 인정했다. 박 지사장은 “서울의 강북, 강남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지방도시도 원도심과 70년대 이후 개발된 신도심의 ‘쌍둥이 구조’를 취하고 있다”면서 “원도심 중심의 도시재생에 대해 ‘왜 거기만 재정을 투입해서 해야 하나’며 반발하는 다른 도심권 상인과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개발사업의 역사가 짧아 재생사업을 주도해 갈 만한 역량을 가진 사업 주체의 부재가 일본과의 큰 차이”라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공공 디벨로퍼’를 표방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최대한 민간 주체의 노하우와 힘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박 지사장은 민간이 들어올 수 있는 지역의 사업에서 ‘관(官)’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인구 50만명 이만의 민간이 들어오기 힘든 사업장에서는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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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사업에서 주민이 소외되는 것도 우리나라 도시재생 사업의 문제점으로 자주 지적된다. 주민참여가 비교적 잘된 사례는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빌더스(CSCB)는 런던 템스 강변 남쪽 사우스뱅크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재생사업기구다. 주민들은 1974~1984년까지 10여년 동안 무분별한 개발을 반대하면서 민간 개발업자를 밀어내고 1985년 비영리 사업체인 CSCB를 설립했다. 이들은 개발 초기 런던시로부터 매입한 부지를 임대주택과 주민 공원 등 공공시설로 만들고 공장·재래시장 등을 리모델링해 수익시설로 운영하면서 지속가능한 재생사업을 벌였다. 이때 토지 매입과 개발을 위한 자금을 융자하는 등의 런던시의 정책적 지원도 뒤따랐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사업은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거의 중단됐다. 서울시만 추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런던대학(UCL) 지리학과 펠로우 겸 한양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인 도시재생 전문가 김정후 박사는 “서울의 집값 상승이 너무나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취한 조치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서울에도 쇠퇴지역이 있는 만큼 도시재생은 절대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도시재생활성화사업지역 지정 후 부동산 실거래가를 전수 조사한 결과 “도시재생과 부동산 투기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하루 전인 11월 20일에는 서울역과 남대문시장, 중림동과 서계동, 회현동 일대 5개권역 195만㎡ 종합 재생의 밑그림인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활성화계획(안)’이 서울시 도시재생위원회에서 수정 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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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은 철도 등 교통시설에 의한 단절로 쇠퇴하고 있는 서울역 일대에 대한 통합적 도시재생을 통해 동서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2019년까지 공공예산 2482억원이 투입되고, 2020년부터는 민간 투자사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사업이다.

김 박사는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은 변형된 개발의 형태”라면서 “해마다 몇 개를 지정해서 시행하는 도시재생방식은 전 세계 어디에도 유래가 없는 위험하고, 근시안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도시재생 뉴딜을 주요 과제로 추진하는 정부는 탄탄한 정책을 토대로 추진하지 않는 재생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정책은 몇십 페이지의 선언문이 아니고, 개별 분야별로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천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도시재생 사업에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이 시행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개발공사와 시 정부 등이 공공 개발 주체이지만 자금 조달과 기술을 맡을 민간 개발업체들에 세제 혜택과 다양한 개발 금융 정책을 제시한 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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