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도시를 만드는 파트너로서의 공무원

지난 2010년 8월에 영국의 건축 주간지인 빌딩디자인(Building Design)에 ‘시티 오브 런던을 건립한 사나이(The Man who built the City of London)’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세계 금융산업의 심장부인 시티 오브 런던을 건립한 사나이가 과연 누구일까’, 독자들이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한 제목이었고, 아마도 리차드 로저스, 노먼 포스터, 테리 파렐 등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쉽게 떠올릴법한 기사였다.
놀랍게도 영광의 주인공은 전문가를 제외하고-심지어는 전문가들조차-거의 알지 못하는 인물로서 시티 오브 런던의 도시계획 책임자인 피터 리스(Peter Rees)였다. 런던시의 공무원이 시티 오브 런던을 건립한 상징적 인물로 평가 받은 것이다. 리스는 시티 오브 런던에 1985년에 임용됐으므로 2010년은 무려 25주년이 되는 해였고, 빌딩디자인이 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런던은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개발을 진행했고, 그 중에서도 시티 오브 런던은 가장 핵심적인 지역이다. 그런데 이곳의 도시계획 수립, 정책 개발, 각종 인허가 등을 담당하는 민감한 자리를 한 명의 공무원이 무려 25년 동안 지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로 탁월한 능력을 지녔고, 둘째로 청렴한 공무원이고, 셋째는 한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가를 키우고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필자가 리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시티 오브 런던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건축가들을 통해서이고, 이후 그의 강연과 세미나 등에 몇 차례 참석한 바 있다. 건축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언급한 리스는 ‘런던의 도시계획을 이해하는 깊이와 균형 감각 그리고 미래를 읽는 탁월함을 지닌 공무원’이다. 다시 말해 시티 오브 런던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평가하고, 성공적으로 시행되도록 유도하는 최고의 전문가라는 평가다. 물론 이러한 리스의 존재는 시티 오브 런던에서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도시계획가 및 건축가들이 넘어야 하는 거대한 산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면 우리의 상황을 한번 살펴보자. 순환보직이 적용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OECD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공직자의 평균 보직 재임 기간이 매우 짧다. 원칙적으로 순환보직제도는 한 자리에서 장기적으로 근무함으로써 자기 개발 및 새로운 동기 부여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막고, 부패를 방지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이와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오늘날 도시환경이 더욱 복잡해지고, 예상치 못한 요구 조건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함으로써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도시 및 건축 관련 공무원의 전문성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건축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쌓고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는 공무원의 부재는 곧 정부부문의 역량이 저하되는 결정적 요인임에 틀림없다. 한 가지 더 눈 여겨 볼 점은 우리나라 개별 도시건축 분야 공무원의 전반적인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수준 높은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함으로 인해 최고 수준의 공무원을 양성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한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도시 건축 공무원의 부재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 및 업무의 일관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도시 건축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장기적인 시행과 관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책임지는 공무원의 유무는 곧 해당 프로젝트의 성패와 직결된다.
리스는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정치인이나 기타 고위 공직자들이 리스를 명령과 지시를 수행하는 하급자로, 전문가들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로비의 대상으로 리스를 여겼다면 수백억 프로젝트가 늘 시행되는 시티 오브 런던에서 어떻게 오래 동안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겠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언론을 통해 간혹 등장하는 도시건축 공무원은 비리와 연루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의 불신은 더욱 쌓여만 가고, 비리와 거리가 먼 공무원들조차 일신의 안위를 위한 안전한 방식을 찾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희망하는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는 일차적으로 도시계획가와 건축가의 능력에 달렸다. 그러나 훌륭한 디자인이 도시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를 이해하고 신념을 가지고 수행할 공무원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훌륭한 디자인 못지않게 훌륭한 공무원을 양성하고, 지키고, 지원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사회가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김정후 박사 20120530

ⓒ 한국건설신문 http://www.conslove.co.kr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