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좋은 도시’를 위하여

로버트 필의 매니페스토 운동
그 여러 긍정적 영향 중에
가장 의미있는 분야는 도시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4월11일에 실시되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판세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최근 속속 등장하는 국회의원 출마자들의 공약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큰 의구심이 든다.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가 국민을 대표해 입법 및 예산심의권을 행사하고 국가적 현안을 다루는 것임에도 경쟁적으로 지역개발 공약을 남발한다.
지역 주민의 투표로 당선되는 국회의원이 해당 지역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이것이 곧 대형 국책 개발 사업을 자신의 지역구에 유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의 환심을 사고 표를 끌어 모으기 위한 무책임한 개발 공약을 남발하는 후진성은 여전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도로 건설은 기본이고, 공항, 항만, 지하철, 다리, 골프장, 각종 관공서, 테마파크, 박물관 건립 등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출마자들의 단골 공약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쯤 되면 국회의원인지 시장인지, 지자체 의원인지, 아니면 개발업자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지역개발 공약이 급조된 것임은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극명해진다. 18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내건 지역개발 공약을 토대로 시행된 사업 중에서 여전히 골칫덩어리로 남은 사례는 전국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통상 선거가 끝나고 1년여 지난 시점부터 ‘○○의원 지역개발 공약 표류!’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가 등장한다. 지역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개발은 중앙 및 지방정부와 긴밀한 협력하에 적정성 검토에서 건설, 시행, 관리 방안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적 검증이 필수다.
국회의원이 헛공약을 남발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기능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언론을 통해 등장하는 영국의 정치인이 한 명 있다. 1834년에 보수당 당수를 지낸 로버트 필이다. 그는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일회성 공약을 지양하고 실현 가능한 공약 수립을 위한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주장은 정당과 선거 출마자들을 검증하고 감시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매니페스토 운동은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성 공약을 제시하지 않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런 매니페스토 운동이 끼친 긍정적 영향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났는데 그중에 특히 의미있는 분야는 ‘도시’다.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쳐서 구체적이고 성취 가능한 지역개발 공약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출마자들이 유행처럼 지역개발 헛공약을 던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분야별 전문가의 참여와 유권자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공약으로 말하고 국민은 표로 답한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민주주의의 뿌리다. 이번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선거철에만 나타나 본분을 망각한 채 지역개발 헛공약을 일삼는 정치꾼들을 가려내는 진일보를 이루기 바란다. 이것이 곧 시민의 힘으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20120323  김정후 박사

ⓒ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