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런던의 이미지를 바꾼 10개의 랜드마크 1

국제화 시대에 도시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시가 가진 이미지는 관광산업의 핵심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이 국제화를 선도하는 도시로 지목한 도쿄, 런던, 파리를 보면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 도시들은 어느 한 분야가 아닌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에서 총체적으로 일반인과 전문가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선명한 이미지를 갖는다. 특히 유럽의 라이벌 도시인 런던과 파리는 고전과 현대 건축, 공원과 녹지, 거리와 공공공간 등에서 경쟁적 위치에 있는 유럽의 여타 도시들을 압도한다.

런던은 21세기에 들어서 다시 한번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그것은 런던의 기존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으로서, 새로운 모험이자 도전으로 여겨진다. 지난 2000년에 런던시장에 당선된 켄 리빙스톤은 21세기의 런던이 지난 20세기의 성공에 안주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할 것임을 지적했다. 따라서 리빙스톤은 모든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그는 특히 랜드마크 건축을 통한 도시 이미지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랜드마크가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랜드마크란 건물, 구조물, 사인 등의 물리적인 것에서 광장, 공원, 거리 등의 공간적인 것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따라서 랜드마크는 특정 장소와 도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런던의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은 새로운 랜드마크를 개발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이 연재에서는 21세기 런던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10개의 랜드마크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관광연구원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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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도시경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부분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런던 역시 템스 강 중심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런던의 이미지를 대표했다. 화가 안토니오 카날레토의 경우, 18세기 템스 강 주변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묘사한 바 있다. 그의 그림이 보여주듯이 런던의 주요 이미지는 고전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이는 지난 20세기까지 유효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런던의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의 핵심은 기존의 런던을 상징하는 고전 건물들과 현대 건물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를 통하여 완전히 새로운 모습보다는 이미지의 단계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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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적으로 볼 때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하이드 파크, 트레팔가 광장 등 런던을 대표하는 기존의 랜드마크들은 대부분이 템스 강을 중심으로 북서쪽에 치우쳐 있다. 그 이유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과 연관된 대부분의 시설들이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템스 강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동쪽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랜드마크는 런던 타워와 타워 브리지 정도라 할 수 있고, 남쪽의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불균형적 상황에서 런던 타워를 중심으로 두 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등장했다. 하나는 런던 타워 뒤편의 센트럴 런던에 세워진 ‘거킨’(건물의 공식 명칭은 30 St. Mary Axe Building)이고, 다른 하나는 템스 강을 건너서 런던 타워 맞은편에 세워진 ‘런던 시청’이다. 놀랍게도 두 건물 모두 한 명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했다. 런던 타워와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거킨과 런던 시청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시선을 넓게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지형적으로 보았을 때, 거킨━런던 타워와 타워 브리지━런던 시청은 적절한 간격을 두고 시각적·공간적 ‘트라이앵글’을 형성한다. 특히 하이테크 건축의 선두 주자인 노먼 포스터가 동일한 개념 아래 디자인한 두 건물은 기존의 세인트 폴 대성당, 런던 타워, 타워 브리지의 고전적 이미지와 어우러져 독특한 도시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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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건축의 장을 연 런던시청

먼저 2002년에 완공된 런던 시청을 살펴보자. 건물이 완공된 후, 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건물을 호텔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런던 시청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사무용 혹은 관공서 건물의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탈피했다. 그 독특한 모습 때문에 이 건물은 많은 애칭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스타워즈 다스 배이더 헬멧’, ‘알’, ‘쥐며느리’ 등이다. 이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그만큼 선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런던 시청은 왜 이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일부 언론에서는 노먼 포스터의 기발하고 독특한 디자인 개념이라고 소개한다. 이는 정확한 설명이라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이 건물은 멋진 형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친환경 건축’을 추구한 연구의 성과물이다. 

10층 규모에 높이 45m인 런던 시청은 사실상 앞뒤 구분이 따로 없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템스 강과 마주한 방향을 정면이라 부를 수 있을 듯싶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 정도의 높이와 면적을 갖는 비슷한 규모의 박스 형태의 건물과 비교할 때, 런던 시청은 정형화된 면을 갖지 않는다. 이 경우에 가장 큰 효과는 건물 전체의 표면적이 약 25%가량 줄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공사비용은 물론 관리 및 유지비용에 엄청난 절감 효과를 유발한다. 반면에 표면적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모든 면이 쉽게 태양열을 흡수하도록 되어 있다. 이로부터 건물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의 70%가량을 충당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런던 시청은 창을 통하여 자연 환기가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이는 아주 간과하기 쉬운 부분인데, 소위 인텔리전트를 표방한 최첨단 건물들이 창 하나 열리지 않는 벙어리 건물로 디자인됨으로써 에너지를 잡아먹는 괴물에 비유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런던 시청의 경우 한여름에도 거의 냉방을 하지 않고 있다.

도시경관의 측면에서 런던 시청의 공헌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템스 강 남동쪽의 랜드마크다. 런던 시청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부근에는 별다른 랜드마크가 없었다. 더군다나 주변 일대는 유흥가만이 밀집하였고, 그 역시 점차 쇠퇴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런던 시청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둘째, 런던 타워와 함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템스 강 남쪽의 강변로를 따라서 걷다 보면 런던 타워와 런던 시청의 이미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런던 타워의 고전적·수직적 이미지와 런던 타워의 현대적·곡선적 이미지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시선을 압도한다. 야간에는 이러한 효과가 더욱 두드러진다.

다른 한편으로 런던 시청은 낙후된 주변 지역을 개발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경관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시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공공간들은 빠르게 그 범위를 주변으로 넓혀가고 있다. 이전에는 타워 브리지를 보러 온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템스 강 남쪽으로 내려올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러나 런던 시청은 다리 위쪽에 머물던 관광객들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공공공간의 개발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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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고층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거킨

거킨은 2004년에 센트럴 런던의 금융 중심가인 뱅크 지역에 완공되었다. 이 건물도 런던 시청과 마찬가지로 많은 애칭을 가지고 있다. ‘오이지’의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언론에 주로 등장한 이름은 ‘미사일’, ‘총탄’, ‘시가’ 등이다. 높이 180m에 이르는 거킨은 런던에서는 여섯 번째, 센트럴 런던에서만은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건물이 지어졌을 당시 이 건물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라졌다. 우선은 기존의 무미건조한 박스형 건물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는 긍정적 평가다.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 도시 런던의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한 디자인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 평가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런던 시청과 마찬가지로 거킨의 형태 역시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적 디자인이라는 원칙을 따랐다. 실제 사용 후 평가에 따르면 거킨에 적용된 첨단 과학과 기술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건물들에 비하여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40%에 달하는 에너지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당연히 경제적 성취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고층건물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정도의 에너지 절약은 세계적 도시 아젠다인 ‘환경’과 부합한다는 사실이다. 거킨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리차드 로저스가 디자인한 로이즈 빌딩과 마주하고 있다. 로이즈 빌딩이 20세기 하이테크 건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라면, 거킨은 21세기 하이테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임에 틀림없다. 

거킨이 등장하기 전까지 런던에서는 지속적으로 고층건물 건립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건립 허가를 얻기 위해 제출한 대부분의 계획들이 반려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런던에 지어진 박스형 고층 건물들이 초기의 기대와는 다르게 런던의 도시경관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쳤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템스 강 주변에서 센트럴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고층 건물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경제적 목적으로 지어진 고층 건물들은 적어도 도시경관의 측면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거킨은 전문가는 물론이고일반인들이 그동안 가져온 고층건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템스 강변에서 보았을 때 거킨은 주변의 건물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그런가 하면 왼쪽으로는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돔, 오른쪽으로는 런던 타워와 시각적으로 적절히 어우러지고 있다. 실제로 거킨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거킨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특히 고전 건물들과의 시각적 연계에 있어서 런던 전역에서 실험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친환경적 디자인이라는 거시적 아젠다와 더불어서, 기존 런던의 도시경관을 어떻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가 동시에 연구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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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중요한 거킨의 역할은 런던 시내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조망지점(viewing platform)’을 제공하는 것이다. 거킨의 경우 런던의 한복판에 위치했다는 지정학적 장점뿐만 아니라, 건물의 기본 형태와 구조적인 특징으로 인하여 360°모든 방향으로 막힘없이 런던을 내려다볼 수가 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런던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작년 연말 BBC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거킨은 예상을 뒤엎고 테이트 모던, 대영박물관 등을 제치고 런던 최고의 현대 건축물로 선정되었다. 이에 힘을 얻어서 거킨 주변은 런던시에 의하여 센트럴 런던의 고층 건물 클러스터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몇 년 안에 여러 개의 고층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결국 거킨은 단순히 하나의 튀는 건물로서가 아니라 런던의 이미지와 도시환경의 대변혁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 본 원고의 저작권은 문화관광연구원 및 김정후 도시건축정책연구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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